우리말 바루기 446. 띄어쓰기, 작지만 큰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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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1980년대 말 한 교수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발간하면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적이 있다. 명문 사립대의, 그것도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가자, 장미여관으로' 등 성적 상상력을 동원한 저작물을 연이어 쏟아내자 반발 역시 거셀 수밖에 없었다. 학교 대자보에는 '나는야 한 여자가 좋다'며 해당 교수의 행태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런 학내외의 반발에도 야한 글쓰기를 즐기던 교수는 외설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고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일반인들이 큰돈을 벌면 살고 싶어하는 '큰 집'이 아니라 가기를 두려워하는 '큰집'에서 살게 될 뻔했다.

보통 글쓰기에서 띄어쓰기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앞의 사례에서 보듯 단 두 번의 띄어쓰기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문장에서 농염한 색깔을 날려버리고 만다.

사실 띄어쓰기는 무척 어렵다. 문필가들도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띄어쓰기의 빈 칸은 작지만 그 사이를 통해 넓고도 심오한 한글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목요일자에 몇 회에 걸쳐 띄어쓰기를 다루기로 한다.

조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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