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한 영화」시대 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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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현행 영화법을 개정, 방화제작과 외화수입을 자유화하기로 한 정책전환은 국산영화의 수준을 높이고 수입외화를 다양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기대해 볼만하다.
우리니라 영화법은 지난 63년에 입법된 뒤 66년, 70년, 73년에 각각 개정을 거듭했으니 이번에 바뀌면 12년만의 개정이 된다. 73년 개정 때만해도 영세한 군소 영화사들이 난립돼 덤핑, 배급질서의 혼란, 부도사태, 사기, 저질작품 양산 등 부조리가 난무했었다. 당시 법개정으로 영화제작을 기업화하고 방화제작자에게만 외화수입권을 연결시켜주는 이른바 수입쿼터 링크 제를 실시, 여기서 생기는 수익금을 영화산업 육성에 투입할 것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결국은 이러한 입법정신은 외면 당하고, 소수의 기업가에게만 영화제작을 허용함으로써 순수한 영화인들을 상술활동 영역에서 내쫓는 결과를 초래했다.
제작자들은 주로 외화쿼터를 노려 당국의 눈치나 살피면서 국책홍보 계몽영화 제작에 눈을 돌리거나 연간 의무제작편수 채우기에 급급했다. 수입외화 수익금은 방화 발전에 투입하지 않고 영화 외적인데로 유출시키는 일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국산 영화는 이처럼 관명의 외면을 자청해온 셈이다.
따라서 이번 정부의 자유화방침은 이같은 제도적 모순을 시정하는 하나의 전기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자율화에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부담이 따른다. 영화인들이 건전한 양식과 책임감을 갖고 국민들의 오락적 욕구와 예술적 기대에 부응하는 적정 수준 이상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각오가 있어야한다. 그러려면 영화인들의 자질향상 노력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관객을 두려워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영화인들은 제작에 임해야한다.
정부로서는 영화예술 진흥의 책임을 제작자들에게만 일임해서는 안된다. 제작비의 융자제도나 제작시설의 현대화, 종합촬영소 건립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 하니 그 실행에 기대를 갖는다. 그러나 소재의 선택이나 검열기준의 과감한 개선도 단행해야 한다. 성인영화엔 「미성년자 입장불가」란 조건을 붙이면서도 검열기준은 관객을 미성년자로 취급하는 난센스도 지양돼야 한다.
예술창작의 자유는 소재선택의 자유부터 허용돼야 가능하다. 방화의 소재가 향토색 짙은 고전물이나 난센스 코미디, 호스티스물 아니면 홍보계몽 영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소재선택의 한계에 있음은 당국이 통절히 반성할 일이다.
방화의 제작과 외화수입을 완화한 것은 영화업자가 수입에만 치중할 우려를 내포한다. 따라서 수입업자의 예치금은 이를 억지 할만큼 걱정수준 이상이어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규정이 획일적으로 적용되면 수입외화가 흥행성 위주로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오락성이 강한 영화가 저질이라는 독단은 금물이지만 흥행에는 실패하더라도 예술적인 가치가 충분한 작품에 대한 선호도 무시돼서는 안될 것이다. 보다 풍부하고 폭넓게 세계 영화예술 사조에 국민과 영화인이 접할 수 있도록 외화수입에 제도적인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 이번 영화법 개정이 방화제작이나 외화수입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양식과 책임감을 눈뜨게해서 우리영화 예술의 중흥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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