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위기감 발언] 지지층서 '國政' 발목잡아 답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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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심기'는 방미 외교를 마치고 귀국할 때까지는 '맑음'이었다고 한다.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미국에서 돌아올 때만 해도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정체된 외국투자를 푸는 단초를 마련했다고 생각해 분위기가 좋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런 기류는 귀국 다음날 발생한 5.18 기념식 사태 등 복잡한 국내상황과 마주치면서 급변했다고 참모들은 전했다.

尹대변인은 盧대통령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발언한 데 대해 "盧대통령은 자신의 방미외교에 대해 '저자세'라며 몰아붙이고, 대화보다는 집단행동을 앞세워 요구를 관철하려는 행태에 대해 몹시 답답해 했다"고 설명했다.

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천성산을 관통하는 고속전철을 반대하면서 지율스님은 단식을 했고, 새만금도 그렇고, 전교조도 NEIS 문제가 뜻대로 안되면 단체연가를 내겠다고 하고, 공무원노조도 파업 찬반투표를 한다고 하고, 요즘은 모두 목숨 건듯이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盧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으로 분류됐던 전교조.한총련 등과의 갈등이 불거지고 전선(戰線)이 형성된 데 대해 야속함과 함께 위기감을 동시에 느끼게 됐다는 게 참모들의 설명이다. 이라크 파병 등 국익 우선의 실용주의 외교에 대한 진보계층의 '몰이해'도 盧대통령을 실망케 했다고 한다.

유인태(柳寅泰) 청와대 정무수석은 "盧대통령은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며 "(이익단체들이)정 그렇게 나오면 법과 원칙으로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면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게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盧대통령의 심경과 관련해 "기존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지지기반은 이탈하는 데다가, 이로 인한 마음 속의 갈등이 '못해먹겠다'로 표현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소수파 내지 비주류 정치인이 갑자기 국정 최고책임자가 되면서 겪는 심리적 갈등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과거에는 별 책임 없이 '옳은 말'과 '소신'만 얘기하면 됐지만 대통령이 돼서 국가장래를 책임지는 막중한 부담을 안게 되고, 외교.안보.경제 분야에서의 고급 정보를 접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게 됐을 것이라고 한나라당의 한 중진은 분석했다.

이와 함께 신당을 비롯한 각종 정치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하고, 이로 인해 총선 전망이 좀체 밝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대통령을 고민하게 만들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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