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200년간 가마에 불 지피는 '옹기 집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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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크고(너비 30m) 가장 오래된(1백여년) 전통가마가 있는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이포2리 산13번지. 이곳이 옹기기능보유자 김일만(63.경기도 무형문화재)씨가 네 아들과 함께 옹기를 빚는 곳이다.

이들의 가족사는 우리나라 옹기 역사 그 자체다. 7대째 2백여년간 가마에 불을 지피며 옹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들의 옹기가 전국에 알려져 생활이 나아졌지만 대부분의 장인이 그랬듯이 이들도 가난 때문에 가족 해체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아내와 네 자녀를 두고 군대에 갔던 金씨가 휴가 나왔다가 비참한 생활을 보고 가족들을 데리고 귀대하기까지 했다.

"우리들은 아버지의 군 상사 도움으로 부대 앞에 조그만 민가를 얻어 생활을 꾸려 나갔지만 고향에 남으셨던 할아버지는 혼자서 옹기를 빚었기 때문에 생활이 무척 어려웠다고 합니다." 셋째 아들 김창호(34)씨의 회고다. 김일만씨는 이런 어려운 가정 형편이 알려지면서 만기 제대를 1년 앞두고 의가사 제대를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7대째 가업을 잇기란 쉽지 않았다. 생활방식이 서구화되면서 예쁜 플라스틱 그릇이 넘쳐났고 옹기는 일반 가정에서 천덕꾸러기로 밀려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활비 마련도 벅찼다.

그래서 첫째 아들은 초등학교 교육조차 받지 못했고, 둘째는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들 가족은 "학교공부는 사치였다"고 말한다. 이런 생활을 견디다 못한 김창호씨는 가출하기도 했다.

"무작정 상경해 지하철 신문배달원 합숙소에서 새우잠을 잘 때 묵묵히 물레를 돌리고 있을 아버지와 형.동생이 어른거리더라고요. 결국 돌아가 다시 물레 앞에 앉았죠."

이제 아들들은 오랜 흙일로 굳은 살이 두껍게 박힌 아버지의 손을 닮고 싶어한다. 아버지와 조부, 증조부가 그랬듯이 그들은 옹기장이의 길을 다짐하고 자신들의 자녀들도 내심 그렇게 커주기를 바란다. 이런 뜻을 알았는지 첫째 아들 김성호(40)씨의 쌍둥이 아들은 수업이 끝나면 옹기 일을 돕는다고 한다.

이들 가족의 외길인생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해 1996년 김일만씨는 기능전승자로 인정받았고, 지난해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선정됐다. 국가로부터 산업포장도 받았다.

창호씨는 "요즘은 주문생산을 할 정도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래도 월급을 주고 사람을 고용할 형편은 못되지만 1백년 된 가마와 2백년 넘은 우리 가족사가 있는 한 우리도 그 울타리 속에서 열심히 우리 길을 갈 겁니다"라고 다짐했다.

이들 다섯 부자(父子)의 삶과 애환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올해 처음 실시한 '제1회 기능장려 수기작품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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