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짝 대문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온누리가 눈속에 덮인 거리 여기저기서 『아이쿠』 하는 비명이 튄다.
빙판을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걸으며 집으로 오는도중 흙길을 만났다. 반가왔다. 온누리의 흰빛을 쪼개며 비어져 나온 갈색의 땅. 다리의 긴장은 누그러지고 구두가 전하는 땅의 감촉은 부드러웠다.
눈이 오기만하면 잽싸게 쓸어낸듯 길섶의 눈이 긁혀져있는 그 집앞이었다.
마른 나무 울타리에 매달린 사립문은 항상 비스듬히 자빠져 있어 수시로 드나들 귀찮은 이들의 성화를 어떻게 배겨내는지 지날때마다 나를 궁금하게하는 그 집. 우리네 습속이 대개 그렇듯 그집의 문도 그저 형식일뿐 초가의 뒤꼍쪽 토껼은 울타리마저 벗어버린채 북풍을 맞고있어 을씨년스럽다.
나무 타는 구수한 냄새에 이끌려 돌아보니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있는 안노인과 장독대옆 샘에서 김 오르는 물을 푸는 아낙은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워올리고, 토방에는 강아지가 쫄랑거리고, 울타리밑에는 씨암탉이 모이를 찾고 있었다.
서울 어느 집의 정경이다. 그러나 이 집과 이동네의 운명은 절박하다. 이 집의 안온은 멀지않아 깨어질 것만같다. 우리 아파트에서 보면 고층아파트숲에 포위되어 우물밑 같은 곳에 초가·술레이트·기와지붕이 까마득히 깔려있고, 아침 저녁 연기를 피워올리는 이 동네를 도시 아닌것에 인색한 독불장군같은 서울이 지금 이대로 얼마나 더 두고 볼는지….
서울의 끝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서울의 유혹을 물리치고 지금까지 버텨온 그들이 용하고 신기하게 생각되어 마음껏 갈채라도 보내고싶다.
이제 어쩔 수 없는 추세에 밀려 거죽은 벗겨 보내더라도 알팽이만은 꼭꼭 여며두기를 바라는 것은 한낱 부질없는 내 감상인지 모르지만 우리 본디의 좋은것들이 갈곳없이 쫓겨갈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서울강동구방이동반포아파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