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교복대란, 청바지·잠바 입고 학교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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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중학교에 입학한 김모(13ㆍ경남 창원)양은 입학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사복을 입고 다닌다. 청바지에 티셔츠, 코트 차림일 때가 많다. 학교에 교복을 납품하기로 한 교복업체로부터 교복을 받지 못해서다. 학교 측은 “사복을 입다가 이르면 4월에 나올 하복부터 입을 것”이라고 공지했다. 김양의 어머니는 “딸이 사춘기라 옷에 신경 쓰다 보니 교복 값 외에 20만원이 들었다. 4월에 하복이 나와도 추워서 5월은 돼야 입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 국공립 중고교가 교복 학교 주관 구매제(공동구매)를 시행하면서 정작 교복을 착용하지 못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공동구매는 학교가 최저가 입찰 방식을 적용해 낙찰된 1개 업체에서만 교복을 구매해 학생들에게 공급하는 방식이다. 교복 값에 낀 거품을 빼 학부모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도입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이 제도를 적용한 40여 개 고교가 교복 착용 시기를 개학일에 맞추지 못했다. 교복업체가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바람에 교복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교복업체가 공동구매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에게 교복을 팔지 않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고1 학부모 김모(43ㆍ충북 청주)씨는 아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교복을 사주려고 공동구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와 계약한 교복업체에서 동복 조끼에 학교 로고를 다는 식으로 지난해와 디자인을 바꿨다. 어쩔 수 없이 교복을 다시 사려고 전화를 했더니 교복업체 대표는 “공동구매에 참여하지 않은 학부모에겐 돈을 두 배 줘도 교복을 팔 수 없다”고 했다. 고1 학부모 박모(45ㆍ서울 관악구)씨도 “딸이 선호하는 교복 브랜드가 있어 사주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벌점을 받을 수 있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교복을 받은 학부모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입학 1주일 뒤 교복을 받은 중1 학부모 조모(44ㆍ서울 구로구)씨는 “동복 재킷 옷감이 뻣뻣해 촉감이 떨어졌다. 가슴에 명찰 다는 끈이 너무 짧아 직접 수선해 달아줬다. 맞춤복이지만 기성복보다 질이 형편없다”고 지적했다.

업체가 교복을 제작하는 데 8~10개월이 걸린다. 교육부가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제도를 시행했고, 학교는 지난해 10월 공동구매 업체를 선정하면서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상준 교복협회 회장은 “1개 업체가 짧은 시간에 200명이 넘는 신입생의 교복을 공급하다 보니 납품 기일을 맞출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틈을 비집고 공동구매에서 배제된 일부 대형 교복업체들이 가격 할인을 내걸고 호객 행위도 한다.

강병구 교육부 학생복지정책과장은 “교복을 반드시 개학일에 착용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며 “최저가 입찰을 통해 기존보다 34% 가격을 인하시킨 만큼 학부모를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또 “학부모에게 공동구매를 선택할 수 있게 하면 개별 구매로 가는 셈이라 교복 값이 다시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선 “최저가 입찰을 하되 Q마크 품질인증을 획득한 업체에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11일 공동구매 상한 가격으로 동복 20만4316원, 하복 8만2572원을 정해 17개 시ㆍ도 교육청에 권고했다. 정현증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사무처장은 “가격 외에 품질도 입찰 경쟁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 학교가 여러 업체를 선택하고 학부모가 그중에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붙여야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환ㆍ신진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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