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오페라 무대 한국 성악가 '점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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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①줄리엣 리(베를린 코미셰오퍼 객원 가수)

②김동섭 ③권해선

한국인들은 노래를 잘 한다. 우수한 성악가들도 많다. 일단 스타덤에 오르면 대중 가수 못지 않는 인기를 누리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다. '제2의 조수미'를 꿈꾸며 이탈리아 로마와 밀라노에 유학 중인 성악도들만 줄잡아 5000명이 넘는다. 국제 성악 콩쿠르 결선에서 한국인끼리 경쟁을 벌이는 일이 허다하다. 하지만 세계 굴지의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다고 해서 금방 큰 극장 무대에 세워주지 않는다.

5~10년 전 성악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한국 출신의 신예 성악가들이 최근 독일 무대로 대거 진출하고 있다. 전속 가수로 극장에 거의 매일 출근하는 사람만도 40명이 넘는다. 독일의 어떤 도시든 오페라 극장의 앙상블(전속 가수 그룹)명단에서 한국인 이름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남자 성악가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신예 성악가들이 독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는 뭘까. 독일은 중소 도시라도 튼실한 오페라 극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속 가수제를 실시해 일단 계약을 맺으면 2~3년간 조역.단역.주역을 두루 맡아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다. 적지 않은 연봉에 의료 보험 혜택까지 받아 생활의 여유와 안정도 누릴 수 있다.

이에 반해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 서기 위해선 작품마다 매번 치열한 경쟁을 동반하는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 동양 출신이라는 핸디캡도 만만치 않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정상급 성악가가 아니라면 오디션을 치러야 하는'영원한 객원 가수'는 자칫 의욕 상실을 불러 올 수도 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 극장의 재정 형편 악화로 문을 닫는 곳도 많다. 국고 지원을 삭감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후 단식 투쟁을 벌이는 성악가들도 있을 정도다.

한국 성악가들의 독일 진출이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귀국해 활동하고 싶어도 오페라 상연 기회가 드물어 무대를 독일로 옮긴 것 뿐이다. 탁월한 기량의 성악가들은 많이 배출해낸다고 한국 오페라계가 급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전속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제작진, 스태프를 거느리고 거의 연중 무휴로 오페라를 상연하는 전용 극장을 하루 빨리 갖춰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 바로잡습니다
11월 28일자 26면 '독일 오페라 무대 한국 성악가 점령'기사의 부속 표에서 테너 박기천(하노버 극장 주역 가수)씨는 서울 광장동 소재 '장신대'가 아니라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서울장신대' 출신이므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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