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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오류 지적에 적반하장의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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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펴낸 지 한 달 갓 넘은 교재다. 오류를 지적한 의도가 불순하다.” EBS 교재 출판 담당 간부는 9일 아침 통화에서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문제의 70%를 연계해야 하는 『EBS 수능특강』 교재가 전문가 분석 결과 오류투성이로 드러났다는 이날의 본지 보도를 접하고서다. 그는 “지적된 오류를 받아들일 수 없다. 분석한 전문가가 믿을 만한 이들이냐”고 물었다.

 답을 해줬다. “과목별로 수능 검토위원이나 EBS 강사 경력을 지닌 현직 교사, 학원 강사들이 분석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EBS 교재가 고3 수험생들에게 교과서로 통하는 만큼 오류가 분명하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오류 45건 중 기사에 담은 건 5건뿐이다. 소개하지 못한 오류 중엔 ‘남아시아’로 분류하는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를 ‘서남아시아’라고 표현한 부분도 있다(세계지리 해설 56쪽). 신라 지증왕 때 국호를 신라로 변경했다는 내용도 나온다(한국사 18쪽). 전 수능 검토위원 조모 교사는 “(신라는) 이전에도 신라(新羅) 또는 사라(斯羅) 등으로 불렸고, 지증왕 이전에 세운 광개토대왕비에도 ‘新羅’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지증왕 때 국호를 변경한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국호를 정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EBS 측에선 “오류에 대해선 이의 신청을 받아 심사 후 고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교재가 시중 참고서보다 뛰어난 건 물론이고 오류도 교과서보다 훨씬 적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적반하장격의 태도”라고 꼬집었다. 한 수학 교사는 “잘못을 알려줬더니 EBS 측에서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기 때문에 틀렸을 리가 없다’고 해 말문이 막혔다”며 혀를 찼다. 입시학원의 한 인기 강사는 “시중 참고서는 문제에 스마트폰 QR 코드를 넣어 상세한 동영상 해설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영어 교사는 “고3 교실에선 교과서 대신 EBS 교재를 펴놓고 수업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도 교과서를 제쳐놓고 EBS 교재부터 달달 외운다. 오류가 없도록 교재 집필에 완벽을 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0년부터 수능에 연계된 EBS 교재는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기여했지만 공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수능에서 잇따른 오류를 일으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이달 중 수능 개선책을 내놓을 교육부는 EBS 교재의 활용 범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당장 연계를 끊기 어렵다면 계열별로 20권에까지 이르는 교재 수부터 줄여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이 교과서를 바탕으로 수능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해 수능에선 엉터리 문제들을 보고 싶지 않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