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1년] 우크라이나 등 '색깔 혁명' 도미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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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이 22일로 1주년, 그루지야의 '장미혁명'이 23일로 2주년을 맞았다. 2003년 11월 그루지야를 시발로 그동안 우크라이나(2004년 11월)와 키르기스스탄(2005년 3월) 등 옛 소련권에서 세 번의 민주화 혁명이 성공했다. 그러나 부패 척결, 경제난 해소 등 당시 내걸었던 공약의 이행은 기대 이하여서 혁명의 의미가 퇴색한 느낌이다. 여기에 민주화 주역들의 분열과 스캔들이 겹치면서 국민의 실망은 가중되고 있다.

◆ 우크라이나=최근 키예프 라줌코프 연구소가 19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8%가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이 오렌지혁명 당시 내걸었던 공약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AP 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유셴코 지지율은 올 초 46.7%에서 지금은 14.3%로 떨어졌다. '우크라이나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18.3%에 그쳤다. 이대로 가면 내년 3월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가장 큰 원인은 경제다. 우크라이나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12%에서 올해는 한 자릿수로 뚝 떨어졌다. 물가는 나날이 오르고 있다. "혁명 전보다 살기 어렵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혁명 당시 부부처럼 가까웠던 율리야 티모셴코 총리와도 갈라섰다. 대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총리로 앉히기 위해 혁명의 타도 대상이었던 야당과 손잡아 국민의 실망을 자아냈다.

정실 인사와 가족 비리도 불거졌다. 유셴코는 취임 후 자신의 조카를 카르키프 지역 부지사로, 친구를 산업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장관이 된 친구가 운영하던 회사는 유셴코의 사위에게 넘어갔다. 아들 안드레이는 열아홉 어린 나이에 최신형 BMW를 타고 최고급 레스토랑을 단골로 드나들어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권력을 잡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며 유셴코의 실정을 꼬집었다.

◆ 그루지야='장미혁명'으로 대통령이 된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지난해 러시아를 등에 업고 분리 독립을 주장한 아자리야 자치공화국과 내전 위기까지 치달았다 이를 잘 해결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탈세와 수뢰 등 부정부패에 철퇴를 가하겠다는 공약도 상당 부분 지켰다. 그러나 여기도 문제는 경제다. 60%를 웃도는 실업률과 극심한 인플레는 혁명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로이터 통신은 23일 전했다. 통신은 사카슈빌리 정부의 경험 부족과 아마추어리즘도 고질적 문제로 지적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여비서를 임신시키는 추문으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 키르기스스탄=올 3월 '레몬혁명' 이후 이 나라의 정국 혼란은 아직도 심각하다. 총선 부정이 혁명의 원인이었지만 정작 의회는 해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은 정국 안정을 구실로 의회 해산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달까지 의원 3명이 분노한 폭도들에 의해 살해됐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는 상황이다.

로이터 통신은 21일 "키르기스스탄이 무정부 상태로 빠질 위기"라고 전했다. 중앙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로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혁명 공약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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