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결국 두 개의 수도로 가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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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헌재의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최고의 헌법 해석기관이고 그 결정을 따르는 것이 법치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정략적 발생에서 추진된 행정수도 건설을 둘러싸고 지역.이념적 대결 양상을 보이는 등 심한 갈등을 빚어 왔다. 지난해 10월 헌재의 위헌 결정에도 정부가 행정도시 건설을 밀어붙이고 표를 의식한 야당까지 합세함으로써 논란은 증폭돼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헌재 결정이 갈등과 논란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길 기대했었다.

그러나 헌재는 이번에 각하 결정을 내려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헌재가 결정문에서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 헌법의 취지에 위반되지 않는 경우 이를 헌법 개정의 시도로 볼 수 없다"고 밝힌 게 그것이다. 특별법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없어 헌재가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소수 의견이 지적한 대로 행정도시 건설은 수도 분할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과거 위헌 결정의 근거였던 관습 헌법의 기준과 한계가 무엇인지 모호하다. 그래서 헌재가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헌재는 총리실과 재정경제부 등 이전 대상 기관에 대해 "국가 정책에 대한 통제력을 의미하는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경제와 산업은 정치.행정과 긴밀하게 얽혀 있을 뿐 아니라 갈수록 급박하게 맞물려 움직이는 경향이다. 이런 추세는 세계적 대도시로 첨단 기능이 집중되는 현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국무총리와 12부.4처.2청 등 49개 기관이 국가 통제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헌재의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고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수도 분할은 정부 행정을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이에 따른 국력 낭비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과 공주 사이에 뿌려질 교통 비용과 시간 비용, 이에 따른 행정 비효율성은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 대부분의 부처가 120㎞나 떨어진 위치에서 일하는 국가는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어렵다. 독일의 베를린과 본의 사례가 인용되지만, 이는 통일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통일 이후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행정도시는 수도가 아니기 때문에 통일 이후의 문제는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실질적으로 수도가 분할된 상황에서 통일 이후 수도의 입지 선정 문제는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서울과 공주.연기를 잇는 경부 축으로의 집중이 심화되면서 오히려 국토 불균형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을 옮긴 뒤 남은 부지의 활용으로 인한 서울과 수도권의 마구잡이개발 가능성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특히 이전 비용 충당을 위해 이 같은 정부나 공공기관 이전 부지에 고밀도 개발이 허용될 경우 서울이나 수도권의 환경 악화는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행정도시 건설은 몇 년 안에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정권이 바뀐 뒤에도 일관성 있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도 만만치 않다. 수십 조원의 재원이 투자되는 행정도시 건설이 진행되다가 흐지부지된다면 재정.사회적 비용 낭비는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