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5차 경추위 첫날] 北, 위협·경협 양면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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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평양에서 열린 5차 남북경협추진위원회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북한이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벽두부터 쌀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북측이 비공개 회의 내용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놓고 남측이 문제를 제기하는 신경전도 있었다. 북측은 다른 한편으로는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강조하면서 대북 지원과 함께 경협사업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북한 진의 뭘까=북측 박창련 위원장은 "남측이 대결관계로 나간다면 북남관계는 영(零)이 될 것"이라면서도 발언 수위에 신경을 썼다.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 중 '북한이 하자는 대로만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을 거론하면서도 "(이같이) 공언한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는 식으로 누그러뜨렸다.

정부 당국자는 "朴위원장의 발언 중 비난성 언급은 일부"라며 "기조발언의 대부분은 6.15 공동선언의 이행과 경제협력 사업의 차질없는 이행에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남측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있다는 얘기다.

한편 남측 위원장인 김광림 재경부 차관은 북측의 이날 발언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경협, 인도적 지원을 위해 노력해온 우리의 성의를 악의로 대하는 것이라고 지적, 납득할 만한 조치를 요구했다.

대북 지원은 순항=북한의 뻣뻣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차원의 대북 쌀지원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라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북한이 이번 회담을 한.미 정상회담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장(場)으로 만들 것이란 점은 정부도 예상했다.

대북 지원을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일각의 여론을 감안해 투명성 보장 등 조건을 제시하는 형태를 취했지만 정부의 지원의지는 확고한 듯하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북정책에 변화조짐이 보이는 것 아니냐는 관망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궁지로 몰기보다 달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핵 문제를 거론하되 합의문에 담으려 고집하다 회담을 망치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복안도 이 때문이다.

21일 회의부터는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관광 등 3대 경협사안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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