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해외 원정가는 데모 종주국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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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찰청 등에 따르면 1800~2000여 명의 국내 시위대가 홍콩 WTO 회의에 몰려갈 것이라고 한다. 2년 전 멕시코 칸쿤 WTO 회의에선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할복자살해 충격을 줬다. 흥분한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을 뚫으면서 대규모 충돌도 빚어졌다. 홍콩 경찰이 부산 APEC에 경관을 파견해 농민단체의 시위 행태를 사전 조사하는 등 긴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시위대의 구금에 대비해 빅토리아 교도소에 일정한 공간까지 확보해 놓았을 정도라고 한다.

합법적 시위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시위를 위해 해외로 원정하는 나라가 됐다는 게 개운치 않다. 농민단체들은 농촌경제가 어렵다고 국내에서 과격시위를 했다. 이제는 비행기표 끊어가며 원정시위까지 한다면 역설적으로 "농촌이 잘살기는 잘사는 모양"이라는 지적에 무엇이라 답변할지 궁금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홍콩에선 홍콩 법률이 적용된다. 홍콩은 법치 전통이 확고한 곳이다. 공공질서법에 따라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면 폭동으로 간주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국내에서처럼 시위대가 진압 경찰을 구타하거나 마음대로 거리를 휩쓸고 다니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농민단체들은 왜 해외에서 폭력시위의 상징으로 낙인찍혔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이러한 대외적 이미지가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될지 돌아봐야 한다. 세계 11위 무역대국 국민이 왜 홍콩까지 몰려가 WTO 회의를 반대하는지 너그럽게 이해해 줄 외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