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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기자의뒤적뒤적] 삶이 걱정·집착한다고 풀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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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지음, 마음산책

오늘이 바로 대입수능시험 치르는 날이네요. 수험생 부모들의 초조함이야 말할 것도 없죠. 아마 온종일 길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어머니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내게도 곧 닥칠 텐데…'하는 심정에, 수능 소동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어머니들은 더 많을 테고요. 그런데 오늘로 수험생 부모의 역할이 끝나는 게 아니랍니다.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논술 준비며 학과 선택에 머리를 싸매야 합니다. 성적이 기대만큼 좋지 않으면 그 고민은 더 깊어지겠죠. 하지만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후회나 한탄은 아이의 짐만 무겁게 할 따름입니다. 아이에게나 자신에게나, 스스로 대견하다 이르고 잠깐 숨 돌리고 마음 비우는 것도 한 방법 아닐까요.

이럴 때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지만, 그래도 혹 도움이 될까 싶어 젊은 작가의 에세이집을 골랐습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가 올 때까지 그의 방에서 뒹굴며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는" 기분으로 쓴 글이랍니다.

길 잃은 고양이 새끼를 입양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부병에 걸린 고양이를 돌보다가 결국 작가의 아내마저 피부병에 걸리는데 의사가 그러더랍니다. "거 참, 이상하네. 팔과 배에 무좀이 다 걸리다니…"

국민고충처리위원회란 토막 글도 웃음을 자아냅니다. 고뇌도 고통도 아닌 그 무엇이라며 고충의 뜻을 캐다가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두 군데 있다고 귀띔합니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과 신촌 뒷골목에 있는데 앞의 것은 국가기관, 뒤의 것은 소주집이랍니다. 그러면서 술집의 본질적 기능을 이토록 잘 알고 있는 술집 주인이 대견하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아이들에게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지동설을 설명할 자신이 없다며 "아무래도 천동설 때가 좋았다"는 한탄도 합니다. '러브'가 죄지 '호텔'이야 무슨 죄가 있겠느냐고 짐짓 꾸짖기도 하고 하루에 몇 회전씩 돌려 대는 러브호텔에 초고속 인터넷이 있다니 사랑을 나눈 남녀가 그걸로 뭘 할지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 끝 간 데 모르는 호기심, 발칙한 상상력을 보면 작가는 개구쟁이 같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는 않습니다. 구한말 멕시코로 이민 갔다가 과테말라에서 '나라'를 세웠던 조선인들의 흔적을 취재해 '검은 꽃'이란 소설을 쓴 이야기도 나옵니다. 치열할 때와 유희하듯 지낼 때를 구별하는 거죠.

이 책을 읽고나면 유원지를 한바탕 헤매고 난 기분이 듭니다. 그냥 잡히는 대로 가볍게 읽고 나면 삶이란 집착한다고 또는 걱정한다고 풀리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 겁니다. 요즘 아이들 말처럼 '쿨'하게 사는 길이 보인다니까요.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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