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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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촌-그곳을 속칭 「달동네」사람들은 「돈동네」라고 부른단다. 이 한마디는 그곳이 잘사는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역임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별로 달가운 느낌이 아닌 그 별명은 서울에 한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의 아파트가 지닌 그와 유사한 느낌의 명성(?)은 가히 전국적이다. 제주도하고도 함덕쯤의 시골에서도 『서울 어디 사세요?』『강남 압구정동요』『아아, 그 호화 아파…) 이런 대화가 구성될 정도인 것이다. 그건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 민감하게 드러나는 현상이다.
『너 어디 사니?』
『나아…혀언대!』
『어머머머, 몇 평짜리니?』 이쯤의 대화를 연출하기를 소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압구정동은 묘한 신기루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10년 후의 압구정동은 그때도 지금과 같은 선망의 주거지로 영광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10년 전의 한강맨션아파트촌을 돌이켜 보면 그 답은 간단히 나온다. 그때 통칭 「한강」으로 불려지던 그곳의 영화는 지금의 압구정동에 못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중산층의 안온한 주거지일 뿐이다.
유행성은 새로움을 쫓는 후조성이다.
10년 후면 압구정동은 도심의 한 복판이 된다. 강바람이 분다해도 매연이 가득 차고 소음이 대단한 곳이 된다. 주거지역으로 썩 좋다고 할 수 없게되는 것이다.
그러니 발전성 있고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그런 곳에 살려하겠는가. 모르긴 해도 서울 외곽지역의 교외에 그럴싸한 단독주택이 들어서 있는 전원 같은 주거지가 생겨날 것이다. 그곳으로의 이동이 일어나겠지.
그리하여 압구정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주거지로서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일류양장점·호텔·케익 집들이 이곳을 고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호화상가는 견뎌내지 못할 것이 뻔하다. 분위기 야릇한 룸살롱도 없어진다. 그 대신 포장마차가 군데군데 자리잡는다. 그때는 마이카시대가 되어 집집마다 차는 있겠지만 운전기사를 둔 배기량이 큰 호화승용차는 찾아보기 힘들게될 것이다.
노점과 과일상이 군데군데 생겨난다.
이동생선가게 (자동차)를 유치하려는 이곳 주부들과 상주 상인들과 의견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돈 아끼며 알뜰하게 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는 동네일 뿐이다.
1984년의 이곳사람들은 서로 속사정 알기 어렵다.
그러나 1994년의 압구정동 아파트촌 입주자들은 서로 돈도 꾸고, 음식도 나누고, 이웃일 이것저것 돕고 참견하면서 살아가는 다정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은 참 건강해 보인다.
그러니 지금 압구정동 이야기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여, 돈 좀 약간 많다는 것이 목숨 둘 가진 것은 아니니까 우선 외면하고 10년 후에는 그곳에 사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게된다고 오기나 부려볼 일이다. 조정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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