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 전 국정원 차장 자살 정치권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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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우선 정확한 경위부터 파악돼야 한다”며 반응을 자제했지만 뜻밖의 사태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특히 이 전 차장이 최근 구속된 신건 전 국정원장 재직시절 국내담당 차장을 지냈고 검찰 수사를 받아왔기 대문에 이번 사건이 자칫 ‘정치적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현 시점에서 어떤 입장을 말하기는 힘들다.우선 정확한 경위부터 파악돼야 되지 않겠느냐”며 반응을 자제했다.이 관계자는 “어떤 입장을 얘기하더라도,조사결과가 나온 뒤에나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거듭 신중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김 전 대통령은 동교동 사저에서 이 전 차장의 사망 소식을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즉각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찰 수사 결과 정확한 사인이 나온 뒤 무슨 말을 해야 될 것 같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국민의 정부의 한 관계자는 “숨진 이 전 차장은 구속된 신건 전 국정원장과 긴밀한 사이인 것으로 안다”면서 “환갑도 넘으신 분이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면서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마음의 부담을 크게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국면이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정치권도 충격에 빠졌다.

특히 여야는 이 전 차장의 죽음이 자살로 추정되는 만큼 유서 내용 등에 따라 정국이 요동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도 이번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폭발력을 감안한 듯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모습이다.

열린우리당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전병헌 대변인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직 사인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영식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며 “미묘한 시기인 만큼 조사과정을 잘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 정보통으로 꼽히는 한 인사는 “이 전 차장이 검찰에 갔다와서 무리하게 조사를 받아 괴롭고, 죽고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며 검찰 책임론을 제기했다.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 때문에 무리한 진술을 했고, 양심의 가책으로 자살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전 차장이 도청 자료의 한나라당 유출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았다.이 관계자는 그의 사망이 한나라당 도청 문건 폭로 의원들에 대한 소환이 임박한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과, 검찰에서 이와 관련된 조사를 받았다는 점을 그 근거로 내놓았다.

임동원ㆍ신건 전 원장 구속이후 현 정권에 대한 비판에 앞장서왔던 민주당도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유종필 대변인은 “국민의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분이 그런 일을 당한 데 대해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섣불리 정치적 의미를 달아서는 안된다”며 “진상파악이 먼저”라고 말했다.이낙연 의원도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나경원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며 “한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 정권 차원에서 자행된 일”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특히 불법 감청사건으로 임동원ㆍ신건 전 원장과 김은성 전 차장이 이미 구속된 데 이어 이 전 차장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지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안타깝고 서글프다”고 말했을 뿐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다른 직원들도 뉴스 등을 통해 이 전 차장의 사인이 자살로 추정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심리적 압박감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는 반응을 보이며 안타까워 했다.

변호인들은 이 전 차장의 사망소식에 전혀 예견하지 못한 일이라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개인적 친분으로 변호를 맡게 됐다는 한모 변호사는 “전혀 이해가 안 된다.자살할 만한 아무 이유가 없다.이씨는 도청 사건에 깊이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있다.본인이 책임질 만한 일은 없을 텐데…”라며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변호사는 또 “나와 최근 만났을 때도 통상적인 얘기만 주고 받았을 뿐이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 특별한 문제점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무 당황스럽다”며 “(자살) 배경이라고 말하거나 예상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서가 있다면 유서 내용을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며 “내가 깜짝 놀랄 지경이니 가족이나 주변 사람도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깝다는 반응이었다.

또 다른 변호인인 김모 변호사는 “상당히 뜻밖이다. 그동안 이씨가 검찰 조사를 받은 게 여러 차례 되는데 자살한 만한 징후는 전혀 못 느꼈고, 자살의 동기로 의심할 만한 것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씨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보였는지에 대해 “본인은 도청 사건에서 관여도가 낮다면서 불구속시켜 달라고 요청했다”며 “통상적인 업무 범위에서 변호를 한 것이어서 그밖에 자세히 아는 건 없다”고 답했다.

연합뉴스.디지털 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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