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 15년 만에 벤츠 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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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씨(왼쪽)가 나락 가마니가 가득 찬 창고에서 아들 창수씨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따 상품화한 쌀을 들어 보이고 있다. 칠곡=조문규 기자

16일 오후 4시 가을걷이가 끝난 경북 칠곡군의 '만석꾼' 김종기(56)씨 집은 벼를 찧는 도정(搗精) 소리로 요란했다. 김씨는 올해도 아내(52)와 아들(27) 등 가족 셋이 집 주변 700마지기(14만 평)에서 벼농사를 지었다. 열흘 전쯤 추수가 끝나 창고마다 벼 가마니가 가득하다. 김씨는 "올해는 멸구 피해가 조금 있었을 뿐 풍년"이라며 쌀 주문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그가 올해 수확한 벼는 14만 평에서 1만2000여 가마(40㎏짜리). 도정하면 쌀 4000여 가마(80㎏짜리)쯤 나온다. 쌀 한 가마에 평균 15만원을 잡아도 김씨는 올해 대략 6억원어치를 생산한 셈이다. 이는 칠곡군 기산면 농민 전체 쌀 매출액의 60% 정도. 김씨는 경북 최대의 쌀 재배 농민이자, 농림부가 올해 선정한 신지식인이기도 하다. 김씨는 올해도 융자금.설비투자 등을 뺀 순수익 1억5000만원 정도를 벌어들일 전망이다.

원래 김씨는 물려받은 땅 500평이 전부였다. 농사를 지으며 번 돈으로 해마다 논을 사들여 15년 만에 8만 평으로 불어났다. 6만 평은 임차한 농지다. 그 사이 농기계와 설비 재산도 크게 불어났다. 그는 고향 칠곡에서 고교를 마치고 대구에서 2년간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다 부모님 병구완을 위해 1978년 귀향, 참외 농사를 시작했다. 제법 돈을 벌어 농토 사들이는 재미를 붙이면서 그는 논농사로 돌아섰다.

김씨 세 가족이 대규모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비결은 기계화와 친환경 농법이다.

그는 마당 한쪽에 서있는 어른 키만 한 바퀴가 달린 트랙터를 가리켰다. 한 대에 1억원인데 두 대나 있다. "모를 내기 전에 저 트랙터로 하루 100마지기의 논을 갈아엎을 수 있습니다. 닷새면 14만 평 전부를 처리할 수 있어요."

김씨는 또 하루 40마지기에 모를 심는 이앙기 두 대와 콤바인, 1t 트럭, 쌀 가마니를 들어올리는 지게차까지 갖췄다. 여기다 육묘공장(178평), 벼 보관창고(180평), 저온창고(50평), 정미소(80평), 포대에 쌀을 담는 포장소(40평) 등 10억여원을 들여 볍씨에서 쌀 포장까지 집에서 전 과정을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이런 설비 덕분에 시간도 아끼고 생산비도 20%쯤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농약은 아예 쓰지 않는다. 대신 논에 오리를 풀고 정미소에서 나오는 등겨로 퇴비를 만든다. 그는 자광찰벼 등 연구가 끝난 각종 기능성 쌀을 재배해 끊임없이 새로운 쌀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그는 부지런하기로도 소문이 났다. 농번기엔 오전 4시면 일을 시작한다. 바쁜 농사일을 끝내면 오후엔 의용소방대 등 지역 활동도 열심이다. 보람을 찾기 위해서다. 김씨는 장차 벼농사를 이을 외아들 창수씨에겐 최고급 벤츠를 마련해 줬다. 농사를 지어도 벤츠를 탈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서다.

칠곡=송의호 기자<yeeho@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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