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자원봉사자 "품바 공연으로 환자들에게 웃음 전하려고 노력"

중앙일보

입력

1일 울산시 두동면 울산양로원 연화홀. 한바탕 품바 공연이 펼쳐졌다. 누더기 차림에 코와 입술 가득 빨간 립스틱을 바른 각설이들이 깡통을 두드리며 연방 머리와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깡통에서 사탕을 한 줌 꺼내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30여 명 어르신들은 “아이고~ 잘한다, 잘한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각설이 중에는 유난히 환한 웃음과 큰 몸짓으로 돋보이는 이가 있었다. 울산웃음나눔봉사단 공연팀장 이정운(52·여)씨다. 공연을 마친 이씨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 자신 암환자다. 5년 전부터 유방암을 앓았고 지금은 폐암 4기로 전이됐다. 하지만 그는 “어르신이나 다른 암 환자 앞에서 품바 공연을 할 때는 힘든 줄 모른다”며 활짝 웃었다.

이씨는 울산 울주군의 과수원집 칠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12살 때 세상을 떠났고, 이씨는 고교 졸업 후 취직했다. 전자회사를 거쳐 경북 경주의 자동차 부품공장 생산직으로 일했다.

독신인 그는 40대 후반이던 2010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고교시절 육상·핸드볼 선수생활을 해 건강에 자신 있었기에 충격이 컸다"고 그는 말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수술을 했다. 이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고통과 번민에 여러차례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 즈음 평소 다니던 절의 스님이 찾아왔다. 스님은 집에만 박혀 있던 그를 노래방으로 데리고 갔다. 정신없이 노래를 부르는 이씨를 보고 스님은 “노래부르듯 흥얼거리며 살면 된다. 넌 소중한 존재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며 "살겠다고 마음먹었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몇몇이 논의해 2013년 11월 울산웃음나눔봉사단을 꾸렸다. 순수한 비영리 민간단체다. 거리에서 본 품바 공연을 연습해 매주말 암환자와 외로운 어르신을 찾아가고 있다. 간식거리도 함께 사들고 간다. 이씨는 항암치료에 돈을 쓰느라 집을 처분하고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됐지만 "과자·빵 하나를 너무나 고맙게 여기는 모습에" 공연 때면 늘 사들고 가게 된다고 했다.

공연을 하면서 그는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삶에 대한 희망과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력을 심어주는 바이러스다. 그를 만난 암환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암 4기인데도 저렇게 웃으며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병마와 싸워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통으로 가득찬 삶에 웃음을 던져줬다."

유방암 치료를 같이 받으면서 이씨를 알게 된 박말선(48·여)씨도 “언니(이씨)는 내 삶의 소중함을 알려 준 사람"이라며 "나 역시 유방암이 대장·간으로 전이된 상태지만 언니처럼 웃으며 살고, 웃음을 전하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이씨는 유방암 수술 4년 만인 지난해 9월 다시 폐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웃음 공연을 계속할 거라고 했다.
“암 환자가 느끼는 불안함과 두려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으며 힘을 내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면 그게 행복 아닐까요.”

울산=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사진설명=이정운 울산웃음나눔봉사단 공연팀장이 자신도 유방암 폐암 4기 임에도 불구하고 울산대학교병원을 찾아 자궁암 말기의 오태순(53)씨를 찾아 웃음을 나누고 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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