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월요일 (1월1일)하오11시15분 여비서 미시즈 강이 우리침실문을 노크하며 조병왕내무장관이 대통령을 뵙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미 조박사는 경무대내의 대통령집무실에 와 있었다. 대통령은 급히 옷을 입고 집무실로 내려갔으며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조내무는 적군이 유엔군의 방어선을 돌파하여 우리측은 후퇴중이라는 말을 하였다.
경찰은 의정부를 철수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시민들은 이미 미아리를 떠나고 있다고 하였다.

<적, 우리방어선 돌파>
조내무는 대통령에게 다음날 아침, 즉 화요일 상오6시에 경무대를 떠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그는 「챔프니」대령에게 대통령을 위한 비행기를 준비시키겠다고 하였다.
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서울을 철수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국방장관과 「리지웨이」장군 또는 「무초」대사의 이야기를 들어볼때까지는 서울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대통령에게 서울을 떠나도록 충고해올 것임이 틀림 없었다.
조내무는 돌아갔다.
나는 우리의 비서들 몇사람과 직원들을 불러들여 모든 서류를 챙기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없애야할 서류들은 불태우고 거의 새벽4시까지 일하였다. 우리는 다시 침대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는 중포의 포격소리를 들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는데 비행기들이 수도의 상공을 정찰하고 있었다.
한편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불렀다. 정일권장군이 들어와 신국방장관은 조내무가 소집한 회의에 참석중이며 곧 이곳에 올것이라고 말하였다.
정장군은 상황을 설명하였다.
전투는 치열했으며 적군은 막대한 인원의 손실을 입었으나 그것이 그들에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조내무 피난 간청>
우리국군의 손실도 컸다. 미 제24사단은 또다시 많은 병력을 잃었다. 백선엽장군의 1사단도 심한 타격을 입었다.
그 밀고 들어오는 조류를 막을수 없게 중공군은 떼를 이루어 물밀 듯이 침공해 들어오고 있는것이다.
자정이 넘어서 국방장관이 들어와 조내무가 내각이 서울을 철수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하면서 각의를 소집했었다고 보고를 하였다. 국방장관은 미군이 철수하라고 권고하기전에 우리 한국측이 먼저 서울을 떠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내각은 마지막까지 남아야한다. 만약 먼저 우리가 서울을 포기해버린다면 미군들은 무엇때문에 여기에 남아 서울을 사수하려고 할것인가? 「리지웨이」장군은 아직도 서울을 지키도록 희망하고 있지 않은가 등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결코 서울을 떠나지 않을 결심이어서 국방장관과 견해를 같이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통령이 생명을 희생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안전하게 지키도록 강력히 권고하였다.

<이젠 두렵지도 않아>
(필자회고=이 당시 서울을 떠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결심이 확고해지자 나는 다시 죽음을 각오할 수 밖에 없었다.
전란을 겪는 동안 워낙 여러차례 죽음과 마주한 탓이었던지 그토록 겁많은 내가 두려움 보다는 오히려 평안함을 느꼈던 일이 어렴붓이 생각난다.
기독교인인 대통령과 나는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믿고 있으면서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대통령의 권총과 함께 보다 확실한 천국행티킷을 우리는 각자 몸에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자기가 원할때 죽을수 있는 무엇(극약)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 무자비한 대량의 적을 눈앞에 두고 있을때는 어떤 위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그토록 비장하고 심각한 순간에 나는 경무대 뒤뜰의 김치항아리속에 들어있는 김치걱정을 했던 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뭏든 무엇이나 좋은 것은 동포에게 다 줘버리고 또 늘 주고싶어하는 대통령과 달리 나는 대통령에게 필요하거나 우리살림에 긴요한 것은 간직하고 싶어하며 무척 아끼는 편이라서 대통령의 뜻대로 모든 것을 다 내줄수는 없었다.
호주머니는 항상 비어있고 빈주먹을 쥐고 있으면서도 자기 가족과 자기걱정을 할줄 모르는 대통령은 아내라는 부양가족 하나가 생긴 결흠우에도 마찬가지였던, 어느면으로는 한심스런 가장이었다.
그리한 대통령에게 가족이 아내 한사람이라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 모른다고 슬하에 자손을 못둔 내가 남몰래 자위했던 때가 있었음을 이제는 고백하고 싶다.

<김치도 못나눠 주고>
6·25전란뒤에 대통령이 내주고 싶어하는 것을 내가 말릴 때면 으례『당신이 그토록 아껴두었던 것으로 공산당 좋은일만 시키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담요며 자신의 장갑까지도 다 주어버린 성품의 대통령이라서 그때 경무대안에 공산당 좋은일 시킬수 있는 것은 오직 김칫독속의 김치만 남아 있었다.
고용인들을 시켜 인근의 피난 못나가는 노인들에게 그 김치를 미처 나누어주지 못하고 그대로 김칫독속에 담아둔채 부산으로 떠나게 되었다.1월2일.
미국대사관의 「노블」박사가 상오9시쯤 와서 「리지웨이」장군이 오늘 원주지역 일선을 시찰할 예정인데 대통령이 함께 가시어 우리국군의 사기를 북돋워 주기를 원하고 있다는 장군의 뜻을 대통령에게 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