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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랑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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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762년 어느 날 프랑스 남부 툴루즈의 한 개신교 가정에선 청년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마르크 앙투안은 신교도라는 점 때문에 꿈이 좌절되자 목숨을 끊었다. 다음날 소문을 듣고 몰려든 군중 가운데 누군가가 외쳤다. "앙투안은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다 가족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구교의 세(勢)가 강했던 그곳에서 이 한마디는 엄청난 결과를 빚었다. 앙투안의 아버지 장 칼라스를 비롯한 가족은 모조리 체포됐고, 모진 고문을 받았다. 재판관들은 타살의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고, 체포된 이들이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는데도 칼라스를 수레바퀴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죽이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했다. 다른 가족에겐 추방령을 내렸다.

얼마 후 철학자 볼테르가 이 소식을 들었다. 분개한 그는 재판의 부당성을 알리는 전단을 만들어 뿌렸다. 그의 노력으로 칼라스 사건에 대한 재심 여론이 조성됐고, 마침내 상고심이 열렸다. 그리고 칼라스가 사형당한 지 3년 만에 그와 가족에겐 무죄가 선고됐다. 그때 볼테르는 투쟁을 하면서 그 유명한 '관용론'을 썼다. 그는 책에서 칼라스 사건, 종교적 광신(狂信) 풍토 등을 언급한 뒤 신에게 이렇게 기도했다. "당신이 우리에게 미워하는 마음을 주신 건 결코 아닐 겁니다. 서로를 죽이라는 손을 주신 것도 아닐 겁니다. 신이여, 덧없고 힘든 삶의 짐을 우리가 서로 도와 가면서 견딜 수 있게 하소서."

그의 '톨레랑스(관용)' 사상은 프랑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자신을 맹비난한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를 구속하라는 참모진의 건의를 받고서 "볼테르를 구속하는 법은 없다"며 일축한 게 좋은 예다. 그런 게 쌓여 프랑스는 '톨레랑스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어제는 유엔이 정한 '톨레랑스의 날'이었다. 국가와 민족, 종교와 이데올로기, 신분과 계층이 다르더라도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자는 취지로 제정된 날이다.

인류는 과연 그 길로 가고 있는 걸까. 지구촌에 테러가 극성을 부리고, 잘못된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나라가 있는 한 그리 전진한다고 보기 어렵다. 우린 어떤가. 지도자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편 가르기를 즐기는 한 '톨레랑스의 한국'은 요원한 게 아닐까.

이상일 국제뉴스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