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시나리오로 부대 촬영협조 얻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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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평론가협회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하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영화가 '용서받지 못한 자'다. 올 초 중앙대를 나온 윤종빈(26)씨의 졸업작품이다. 하지만 육군본부(이하 육본)는 감독을 고소할 방침을 밝혔다. 육본은 16일 브리핑을 통해 "윤 감독이 '군에서 만난 선.후임병간의 우정'을 그린다는 가짜 시나리오로 부대 내 촬영 협조를 얻은 뒤 약속과 달리 '억압된 군 복무로 선.후임병이 자살한다'는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를 만들었다"며 "중앙대학교 측의 공식사과를 요구하고, 윤 감독을 위계(속임수)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 감독은 "지난해 5월 원래 시나리오를 군부대에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달리 영화를 만들 방법이 없어 수정한 시나리오를 다시 보내 촬영 협조를 얻었다"며 "옳지 않은 방법을 사용한 만큼 개인적인 처벌은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육본은 10일 중앙대 총장에게 공문을 보내 '중앙대 측의 공식 사과' '중앙 일간지 4개사에 사과문 게재' '상영 전에 특정 부대와 무관하다는 자막 표시' 등 세 가지 사항이 지켜지지 않으면 감독을 고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윤 감독 측은 총장 대신 학과장 명의의 사과문을 15일 육본에 보내고, '특정 부대와 무관하다'는 자막을 영화에 표시키로 했으나 육본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년 베를린 영화제와 선댄스 영화제에도 초청된 '용서받지 못한 자'는 18일 서울 대학로의 하이퍼텍나다를 비롯해 전국 15개 상영관에서 개봉한다. 영화 마케팅을 맡은 동숭아트센터 관계자는 "저예산 졸업 영화라 따로 세트를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한 형편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가 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하지만 군에서도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유연한 자세가 아쉽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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