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미군이 보내는 식품 달 갑잖게 여긴 대통령|북어국물로 끓인 떡국, 동치미로 새해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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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51년1월1일.
회고하기조차 끔찍한 고통과 슬픔속에서 보낸 수난의 해가 지나고 새해의 새아침이 밝아왔다.
작년은 사나운 호랑이해였지만 금년은 순한 토끼해라고 한다.
눈물과 피로 얼룩진 호랑이해의 상처를 토끼해인 올해는 말끔히 아물게 해주기를 우리 모두는 기원하고있다.

<북어요리 단골 메뉴>
대통령은 오늘 아침 고깃 국물이 아닌 북어국물로 끓인 떡국을 동치미와 함께 두 그릇이나 들었다.
대통령이 설날인 오늘 우리 국민 모두가 배고픔과 추위를 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순간 나는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왔다.
주로 일본에서 신선한 고기와 온갖 산해진미를 비행기로 날라다 먹고있는 미군장성들과 미국대사가 가끔 우리에게 보내오는 이런 음식들을 대통령은 결코 달갑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개인적인 신세를 지는 일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마련할 수 있는 북어국물로 떡국을 끓이기로 한 것이다.
한가지 다행한 일은 대통령은 고기로 만든 음식보다 오히려 북어를 재료로한 음식을 더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어찜과 북어무침은 우리집의 단골메뉴일 뿐만 아니라 북어대가리나 껍질도 절대로 버리는 일이 없다. 경무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양노인이 북어대가리를 열심히 모으는 것에 대해 대통령이 칭찬하는 것을 보고 나는 북어껍질까지도 함께 모았었다. 맨 처음 나는 마음속으로 이 북어대가리와 껍질은 끓여서 개밥에 섞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6·25전란이 일어나기 전 이른 봄 어느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양노인이 경무대 주방에서 국 끓이는 냄새가 나자 대통령이 잠옷바람으로 나가 한참 동안을 기다려도 돌아오는 기척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갔더니 주방에서 대통령과 양노인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대통령이 새벽의 찬기운에 감기라도 들까봐 잠옷위에 걸치는 가운을 들고 주방으로 내려갔었다.

<양노인 솜씨 못따라>
그곳에서는 북어대가리를 듬뿍 집어넣고 파와 풋고추를 썰어 넣고 끓인 국남비를 가운대 놓고 대통령과 양노인이 대접 가득히 담은 국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대통령의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부인을 여의고 혼자 사는 양노인은 술을 대단히 좋아했는데 전날 밤술을 마시고 아침 일찍 와서 자기가 먹으려고 끓여놓은 해장국을 대통령에게 나누어드린 것이었다.
대통령은 나에게 생선은 머리부분이 제일 맛있고 소는 꼬리부분이 맛이 좋다는 말을 일러준 적이 있었다.
그토록 대통령이 즐겨하는 북어 대가리탕에는 비타민D와 칼슘이 풍부하여 몸에 좋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 그후 나는 양노인이 넣은 재료외에도 당근과 양배추와 고기를 더 넣어서영양가가 훨씬 높은 국물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권했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양노인이 하는 식으로 끓여 달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역시 한국음식맛을 내는데는 내가 양노인을 능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떡국 끓이는 솜씨만은 언제나 내가 제일이라고 칭찬해주었다.

<뜸하던 적공격 가열>
국방장관이 와서 적이 우리의 1사단과 미24사단을 돌파했다고 보고했다. 이것은 적이 일부러 택한 것 같다. 한국군 제1사단은 최정예 사단이다.
여러달 동안을 미군의 측면을 지켜주면서 가장 필요하고 상황이 급박한 곳에 배치되어 왔었다.
지난 며칠동안은 날씨가 몹시 추워 임진강물이 얼어 적이 별 어려옴 없이 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적이 공격해올 위험이 커지자 적을 분리시키기 위해 아군은 철수해야만 했고 거의 1개 연대의 병력을 회생하게 된 것이었다. 미군들은 설치해놓은 가시철망이 적의 공격을 지연시킬 것으로 확신했었으나 적에겐 병력의 손실이란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적은 가시철망 위에 쓰러지고 쌓여서 마치 사람으로 된 침대요 같이 된 데를 뒤따르는 병사들이 밟고 넘어 오더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그리고 더우기 미국에서는 군인들이란 곧 귀한 아들들이요, 아버지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후방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싸움터에 나가있는 군인들에 대해 몹시 걱정을 한다. 그러나 중공군의 경우에는 전혀 아무 것도 아닌 다만 죽이고 불태우는 용암의 덩어리같이 움직이는 인해 (인해), 또는 조류로 생각하는 것 같다.
죽음을 당한다는 것은 생각에도 없는 것이다. 공중으로부터의 기총소사와 맹폭격에 무수하게 많은 적군이 죽었다.
그러나 적병들은 그것을 두려워했건만 그와 같은 공중공격은 물려오고 또 몰려오는 적들을 저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피난민들 하례>
상오 10시 정부는 경무대 앞마당에서 직원들의 신년하례의 모임을 가졌다. 대통령은 그들에게 전시경제와 국가안보에 관해 말을 했다. 상오 11시에는 외교사절단이 방문했다.
11시30분쯤에는「패트리지」장군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패트리지」장군이 도착하지 않아 이 예정은 일단 취소되었는데 그후 장군은 전화로 지금 자기는 대구에 있으며 12시께 비행기로 도착하게 될 것이니 좀 늦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장군은 낮 12시30분에 도착했다. 이 의식의 광경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방송회사에서 기록을 해갔다.
「패트리지」장군은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그는 이 전쟁에서 참으로 큰 일을 했다.
오후에는 각계각층의 많은 시민들이 신년의 하례차 찾아 왔었다.
그중의 어떤 사람은 황해도 곡산등 북한의 여러지방에서 온 피난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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