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보류됐던 이병기 카드 … 김기춘 물러난 24일께 낙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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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새 대통령 비서실장이 인선되는 과정은 난산(難産)이었다. 지난 17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사의를 수용하겠다는 청와대 발표가 있은 뒤 27일 이병기 비서실장이 발표되기까지 꼭 열흘이 걸렸다. 지난달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비서실장 교체를 예고한 이후론 46일 만이다.

 유례없는 비서실장 인선 진통은 인물난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당초 이 실장을 검토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실장이 현직 국가정보원장이라는 게 걸림돌이었다. 현직 원장을 실장으로 기용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국정원장 후임을 찾는 것도 어려워 박 대통령은 ‘이병기 카드’를 일단 보류해 놓았다.

 그러던 중 지난달 23일 내놓은 이완구 총리 카드가 민심을 반전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박 대통령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고 한다. 하마평에 오른 사람들 중 ▶일을 잘하면서도 ▶애국심이 있고 ▶사심은 없으며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박 대통령의 인재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좌한 김정렴 전 비서실장이나 자신을 보좌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만큼 요건을 두루 갖춘 인물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민 끝에 직을 제의한 사람들이 고사하는 경우도 생겼다. 검찰총장을 지내 법조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이명재 대통령 민정특보, 호남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고 경제통으로도 꼽히는 한덕수 전 총리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지난 24일을 기점으로 보류해 놓은 ‘이병기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김 전 실장의 사직서가 정식 수리된 날도 24일이다. 김 전 실장은 그날 출입증을 반납하고 비서실장 공관과 집무실에서 짐도 뺐다.

 그 뒤에도 사흘의 시간이 더 걸린 건 국정원장 후임자를 찾는 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단순히 인사청문회 통과를 위한 검증뿐 아니라 국정원장의 특수한 역할을 감안, 다각도로 검증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를 기용하기로 마음을 굳힌 다음에야 비서실장 그림이 최종 완성됐다.

 이번에도 박 대통령 특유의 ‘인사 보안’은 철저히 지켜졌다. 후보군으로 10명이 넘는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여권 내에서 누구도 이병기 실장의 발탁을 분명히 말한 사람은 없었다. 사람 이름뿐 아니라 발표 시기 자체도 예측하기 힘들었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과도 사전에 비서실장 인선을 협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2시 공식 발표보다 1시간 앞선 오후 1시에야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이 실장 내정 소식을 전해 들었다.

 ◆홍보수석 깜짝 교체=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교체는 예상을 벗어난 인사였다. 지난달 23일 현정택 정책조정수석, 우병우 민정수석, 조신 미래전략수석 등 3명의 수석이 바뀌었기 때문에 추가 인선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윤 전 수석이 설 연휴 전 ‘육체적으로 힘들다’며 사의를 김기춘 실장에게 밝혔고, 이번에 그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윤 전 수석은 지난해 6월 임명돼 9개월 근무했다.

 청와대에선 홍보수석 후임에 김성우 사회문화 특보가 임명된 데 대해 김기춘 전 실장의 작품이라는 얘기도 돌고 있다. 지난달 23일 특보로 발표될 당시 SBS 기획본부장 자리를 그만둔 데 대해 김 전 실장이 미안해했다는 것이다. 김 신임 수석의 친형인 김성익씨는 1983~89년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지내 형제가 모두 ‘대통령의 입’으로 활동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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