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 '사연 있는 등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12월 완공 예정인 '평택·당진 화합의 등대' 조감도.

18일부터 불을 밝힐 경기도 화성 매향리 앞바다에 들어선 '평화 희망의 등대'.

서해안에 면한 경기도 화성과 평택 두 곳에 화합과 희망의 사연을 지닌 등대가 각각 설치된다. 한 곳은 수 년 동안 지자체 간 '영역 분쟁'을 빚던 곳이며, 다른 한 곳은 각종 전투기가 연습용 폭탄을 쏟아 부었던 곳이다.

◆ 평택.당진 화합의 등대=평택지방 해양수산청은 평택.당진항 행담도 북서방 590m에 위치한 암초 위에 평택시와 충청남도 당진군의 화합을 기원하는 등대를 세우고 있다고 15일 밝혔다. 등대가 들어설 해역은 암초가 많아 기상악화시 소형 선박의 좌초 위험이 컸다. 게다가 최근 들어 여가를 즐기는 보트 이용객과 행담도 주변을 운항하는 소형 선박이 급증해 등대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이 해역은 또 평택시와 인근 충남 당진군이 평택.당진항을 사이에 두고 수년간 개발주도권과 어업권 문제를 놓고 다툼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이 갈등으로 두 지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에 따라 이곳에 들어설 등대는 디자인부터 독특하다. 평택과 당진의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두 지역의 영문 알파벳 첫 글자인 P와 D를 형상화한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원형 탑 모양의 일반 등대와는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등대는 3억1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높이 14m, 지름 5.5m(하단)의 철골 구조로 만들며 12월 중에 완공될 예정이다.

◆ 평화 희망의 등대=경기도 화성시 매향리에 있던 쿠니 미 공군사격장 인근에 어민들의 숙원인 등대가 설치된다. 설치공사가 대부분 마무리돼 현재 외벽 도색공사가 진행 중인 이 등대는 이번 주말부터 매향리 선착장 끝단에 불을 밝힐 예정이다. 평택해양수산청은 "어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억5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 높이 16m에 지름 2.5m 규모의 등대를 설치해 앞으로 어민들의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매향리 어민들은 "10여 년 전부터 여러 통로로 등대설치를 요구해 왔으나 미 공군 사격장을 비롯한 군사시설 노출 등을 이유로 거절당해 큰 불편을 겪었다"며 "최근 사격장 폐쇄가 공식화되면서 가능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민들은 만조 때마다 목표물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둠이 짙어 1㎞가량 길게 뻗어 있는 선착장을 발견하지 못하고 아예 운항을 포기하는 경우가 잦았다. 주민 김모(40)씨는 "어민들은 그동안 선박 좌초사고 선박 충돌사고 등 해난사고 위험이 많았고 이로 인해 생계에 지장을 주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평택지방 해양수산청 윤정인 등대담당은 앞으로 "서해안의 지리적인 특성과 안개 발생이 잦은 환경적 요인을 고려, 항해 위험지역 23곳에 등대를 추가 설치키로 했다"고 말했다.

정찬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