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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간통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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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간통죄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이 땅에서 사라졌다. 불륜을 나라가 처벌하는 간통죄는 대한제국 형법이 공포된 당시부터 110년간 유지돼 왔다. 법 제정 당시엔 오랜 축첩 역사로 인해 일부일처제를 기초로 한 혼인제도가 수시로 위협받는 현실을 보호한다는 바람직한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일부일처제 혼인 관행이 정착되면서 이 법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혼인제도의 보호’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충돌하며 간통죄는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그래서 한 개의 법에 대해 1990년부터 다섯 차례나 헌법소원이 제기되고, 네 번의 합헌 결정 끝에 다섯 번째 만에 위헌 결정이 이뤄진 보기 드문 기록을 남겼다.

 시대적 요청과 과잉 금지 위반, 실질적으론 유명무실해진 법을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등의 이유를 들어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번 위헌 결정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과제를 안겨 줬다. 먼저 다섯 차례나 위헌 심판이 이뤄진 것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고, 위헌 심판의 논점은 같은데 결론이 뒤바뀜으로써 헌재의 권위가 훼손될 수 있으며, 헌법소원 만능주의라는 좋지 않은 관행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간통죄의 쟁점은 간통을 형사처벌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것 하나였다. 그러나 법으로만 따지고 보면 네 차례나 합헌 결정이 나왔고, 이번 합헌 의견을 낸 안창호·이정미 재판관의 논리도 타당했다. 법적으로는 다툴 여지가 여전히 많은 사안이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형사처벌이나 형량을 정하는 것은 입법 사안이지 헌재의 판단을 구할 사안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헌재도 과거 합헌 결정 당시 “간통죄 폐지 여부에 대한 입법부의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간통죄는 오랜 논란거리였고, 아무리 합헌 결정을 해도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기소돼도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사문화된 법이었다. 이런 경우엔 국회가 시대적 요청을 반영해 새로 입법을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다. 그럼에도 입법부는 민감한 사안을 회피하고 자신들의 일을 사법부로 떠넘겼다. 이 같은 ‘사법에 의한 입법’은 권력분립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가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또 전문가와 사회단체 등에선 이번 결정에 대해 수긍하는 반응이 많지만 일각에선 ‘결혼의 의무감이 엷어질 것’ ‘불륜에 면죄부를 주게 될 것’이라는 등의 부정적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간통죄 폐지는 간통에 대해 형사적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것뿐이고 윤리적·민사적 책임까지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결정으로 불륜에 대한 응징수단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민사적으로 위자료 기준을 징벌적 수준으로 높이는 등의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간통죄 폐지가 사회윤리의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후속 조치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