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훈장받는 김흥배 외국어대 이사장|6.25 폐허 뒤 인재양성 절감|외국어 배워 해외진출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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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25직후 모든 사람이 폐허위에서 살 길을 찾아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가 가야할 길은 어학교육을 통해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5세 어린나이에 맨주먹으로 상경, 갖은 고생 끝에 모은 큰 재산을 모두 털어 한국외국어대를 설립하고 키워온 김흥배씨(70)가 5일 국민교육헌장선포 15주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는다.
김씨는 54년4월 서울 종로2가 영보빌딩 가교사에서 영어 불어 중국어 독어 러시아어등 5개학과로 외대를 개설, 80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켰고 올해 창립 29주년을 맞는다.
1914년 경기도 여주 가난한 농가의 7남매중 세째로 태어난 김씨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28년 청운의 꿈을 안고 2백리 길을 걸어 이틀만에 서울에 올라왔다.
일본인 문방구상에서 점원으로 일자리를 얻었다.
하루 5시간 잠을 자며 열심히 일하면서 한달 3원의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 4년만에 3백원의 목돈을 모았다. 점원을 그만두고 서울내수동에 문방구와 양품점을 차렸다.
7년만에 수만원의 거금을 모아 김씨는 39년 피복공장을 시작했고 여기서 번 돈으로 다시 광산에 투자, 30데 초반에「당대의 국부」이던 화신상회 박흥직씨와 어깨를 겨를 만큼 거부가 됐다.
해방후에도 김씨는 한국화재해상보험·중앙무진·제일방직·한국신탁등 회사를 설립, 경영하며 국내굴지의 실업가로 활약했다.
사업가 김씨가 인생행로를 바꾼 계기는 6·25 .
전쟁은 그의 사업을 대부분 잿더미로 만들었고 그 폐허에서 그는 돈버는 일보다 더 중요한 사람키우는 일에 관심을 몰리게 됐다.
『우리가 살길은 밖으로 뻗는것 뿐이다. 그러자면 외국어를 먼저 가르쳐야한다』
외대는 이렇게 해서 문을 열었다.
김씨는 그동안 외대육성에 사재를 털어 넣었다. 한은별관 (1백평) 국민은본점 (5백25평) 한일은 광교지점 (1백평) 농협종로지소 자리등 값나가는 도심지 땅이 모두 외대발전에 희사된 그의 부동산.
국민은행본점자리 하나만도 평당3천만원, 싯가로 약2백억원정도다. 한국화재해상보험·제일방직등도 모두 처분했다.
요즈음도 상오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새벽운동으로 건강을 지키며 학교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김씨는 자신의 마지막 사업으로 오는 90년에 완공예정인 80만평의 대지위에 세워지고있는 용인캠퍼스 건설에 전신경을 쏟고있다.『아직도 많은 부동산이 있습니다. 강남에 20만평, 제주도 40만평, 강원도 9백7O만평등을 육영회에 바칠 작정입니다.』김씨는 38년 결혼한 이숙경씨와의 사이에 2남이 있고 20년째 서울청파동에 삐걱거리는 고옥에서 살고 있다. <정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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