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유형의 여대생, 20년 후의 "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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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저는 어머니로부터 순종과 헌신이 여성의 미덕이라고 배웠습니다. 성공한 남자 뒤에는 예외없이 여성의 희생과 인내가 있더군요. 저는 혼전관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부가 남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순결 아니겠어요?』
우우…하는 야유의 소리, 한심스러워하는 학생들 탄식 속에 여학생 A가무대를 떠난다. 다시 요란스런 옷차림의 여학생B가 나타난다.
『왜 대학을 왔느냐 구요? 취직? 결혼? 아니에요. 미팅, 고팅, 야팅, 즐기기 위해서 지요. 봄이면 개나리·진달래가 피는 캠퍼스의 낭만. 왜 근로여성이니 윤락여성이니 골치 아픈 생각을 해요?』『여성들은 너무 오랫동안 남성중심 가부장제에 지배되고 억압받으며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여성은 지배의 쇠사슬을 끊고 스스로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여성해방을 주장하는 C.
『저는 대학에 진학한 것이 세상을 불 수 있는 눈을 뜨게 한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근로여성을 위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여학생D.
이상은 지난 22일하오 연세대학도호국단 여학생부(부장 박현옥) 주최로 이 대학 장기원기념관에서 열렸던 『제3세계 여성해방의 선결과제』-동남아시아와 한국을 중심으로-란 거창한 주제의 여성학강좌중의 촌극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의 장면들.
오늘날 여대생들의 가치관을 크게 4종류로 나눈 모습들인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대학을 졸업한지 2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의 모습이다. 그들은 모두 40대중년 여인이 되었다.
남편의 출세, 자식의 진학을 위한 치맛바람끝에 지금 남은 것은 공허한 세월 뿐. 알뜰히 마련한 살림살이도, 집도 시들하기만 하다. 텅 빈 나날들을 자원봉사자로나 일해볼까 하는 것을 궁리중이라는 것이 A부인.
『인생을 즐기라고 제가 일찌기 얘기했지요? 그동안 부동산투기로 짭짤한 재미를 봤고 요즈음은 사채놀이, 그런 대로 괜찮아요』향락파 여학생B의 변모한 모습.
그는 동창들에게 제주도 단체관광여행을 권유한다.
『졸업 후에 취직을 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제가 원하는 직장은 시험 칠 기회조차 주지않아요. 겨우 힘들게 여비서로 취직을 했지만 이건 숫재 사환취급이예요. 차심부름이나 하는... 할수 없이 결혼했지요』
여성해방론을 주장하던 C는 좌절 끝에 결혼했고 못 이룬 사회진출에의 꿈을 요즈음은 종교를 통한 활동에서 구하고 있다.
기도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다분히 광신의 냄새가 풍긴다.
『대학시절부터 꿈꿔오던 근로여성 연합회가 드디어 오늘 발기대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작은 힘이 불우한 여성들을 결속시키고 그들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한 보람을 느낍니다』
대학시절부터 늘 바삐 뛰어다니던 그는 40대가 넘은 지금도 바쁜 일과에 쫓기고있다. 그러나 일은 그에게 기쁨이고 보람이다. 어느덧 D는 불우한 근로여성의 존경받는 지도자로 성장한 것이다.
D형의 여성을 가장 성공한 타입으로 결론짓는 이 촌극은 오늘날 여대생들의 가치관을 짐작케 해준다.
그들은 또 20여년 후 중년의 변모된 모습을 오늘날과 극명하게 대비시켜 이날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로 하여금 한국 여성문제의 많은 것을 생각케 해주었다.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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