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한일회담 일본의 여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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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구보따」 망언은 한일간의 냉기류를한층 경화시켰다.
6· 25전쟁중 일본의참전론에 대해 『만약 일본이 나온다면 총부리를 남쪽으로 돌려 일본과싸우겠다』고 했던 이승만대통렁에게「구보따」 망언은 비수를 꽂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일의 경솔한 이박사에게 「구보따」 망언은 다시한번 당신 평생에 일본과 상종치 않겠다는 신념을 굳히게한 계기가 됐다고 나는 믿는다.
이박사의 이같은 결심은 다음 회에서 밝힐 「아이젠하워」 미대통령과의회담을 통해 현실화했다.
한편으로 일본 국내사정은 어떠했는가.
일본정부가 회담결렬 직후 그 책임을 우리측에 몰아붙이기 위해 「구보따」 대표를 지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양식있는 일부 일본인들은「구보따」 대표가 한일 양국 사이의 응어리진 과거를 매듭지을 목적의 회담 석상에서 한국의 깊은 상처를 난도질한 것은 결코 올바른 자세가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주간 산경 (산께이신문사 발행) 은11월8일자에서 일본내의 이같은 일부 양식있는 여론에 관해 장문의 기사를 싣고 있다.
산경지는 「구보따」 씨의 발언은 『조심하지 않았다기 보다 한 나라를대표하여 교섭에 종사하는 외교전문가가 할 발언이라고는 생각할수 없는 것』 이라고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
이 보도는 또『「구보따」씨의 발언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 일본외무성은 그자체가 일본의외교를 담당할 자격을 상실했다고 단정하지 않을수 없다』 고 일본정부의 경솔함을 비난했다.
산경지는 나아가 「구보따」망언에대한 김용식한국수석대표의 경고를 당연하다고 지지하면서 『한국측 주장은 또한 당연 이상의 당연한 일』 이라고말했다.
동지는 또 과거의 『국토를 초토화대도…』라는 내전강경외교에 논급하여 현재 한일회담에서의 일본대표및일본외무성 태도는 이러한 초토외교의 전통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고 일본정부의 처사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물론 이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1억인구 (당시)에 비하면 양식을 가진, 그야말로 극소수의 사람들에 불과했을 것이 틀립없다.
그러나 이 한알의 진실이 싹이 텄던지, 아니면 평화선내 자국어선의안전조업이 절박해서였던지 일본정부의 태도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화되어갔다.
회담결렬 직후 「구보따」망언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도록했던 「오까자끼」(강기방남) 외상은 11월11일 중의원외무위에서 『일본정부로서는 지난10월한일회담에서발표된「구보따」성명을취소해야하며 그 이유는 동성명이 「구보따」 개인의 의견으로서 표명됐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오까자끼」외상은 또 「구보따」자신이 회담 재개를 위해 개인적으로 사과할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수석대표가 마지막 회의에서 내걸었던 철회및 사과의 두 조건중에서 일본정부는 처음으로 첫번째 조건을 수락할 뜻을 간접적으로 비쳤던 것이다.
일본정부가 회담결렬 20여일만에「구보따」 대표의 망언이 일본정부의 공식견해가 아니라는 점과 취소할 의향이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다짐한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미국을 향한계산된 발언으로 우리에게 비쳤던 것도 사실이다.
53년11월부터 54년 봄에이르기까지 미국은 한일회담 재개를위해 집요하게 한일양국 정부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닉슨」 부통령은 53년11월l2일부터 15일까지 한국을 방문, 이박사에게 회담재개를 역설했고 15일 일본을방문해서는「요시다」수상과 만나 일본측이 어느 정도 한국주장을 수용하는 선에서 타협하도록 권유했던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경작 중요한 사과의의향은 비치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말썽의 「구보따」 씨를 수석대표직에서 해임해 주멕시코대사로바로 발령해버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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