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g 더 … 묵직해진 박병호 대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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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병호가 방망이 무게를 20g 늘렸다. 지난해까지 사용하던 880g짜리 방망이 대신 올 시즌부터 900g짜리를 들기로 했다. 헛스윙을 줄이고 삼진왕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다.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도중 장난스런 미소를 짓고 있는 박병호. [사진 넥센 히어로즈]

홈런왕 박병호(29·넥센)가 더 무거운 방망이를 든다. 헛스윙을 줄이기 위해 20g 더 무거운 배트를 사용하기로 했다. 박병호에겐 작지 않은 모험이다.

 지난 23일 일본 오키나와현 구시가와 구장에서 만난 박병호는 “예전보다 더 강한 타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해보다 20g 무거운 무게 900g 짜리 배트를 쓰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산 감색 배트를 들고 가볍게 허공을 갈랐다.

 프로야구 최고의 파워를 자랑하는 박병호는 지난해까지 880g의 배트를 썼다. 920~940g짜리를 휘두르는 외국인 타자와 비교하면 가벼운 것이다. 이승엽(삼성·930g)이나 이대호(소프트뱅크·920g) 같은 국내 타자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방망이 무게를 줄이면 임팩트 때 힘이 덜 실리는 대신 스윙 스피드를 끌어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지난해까지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배트를 선호했다. 보통 나이를 먹으면서 배트 무게를 조금씩 줄이는데 박병호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박병호는 “지난해 52개의 홈런을 치면서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헛스윙이 많았고 삼진(142개·1위)도 많이 당했다”면서 “그걸 보완하기 위해 방망이 무게를 늘렸다. 무거운 배트를 잘 돌리려면 스윙 스피드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겨우내 박병호는 체중을 뺐다가 닭가슴살을 섭취하면서 운동을 통해 근육을 키웠다. 그 덕분에 원래 몸무게(107㎏)를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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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까지 박병호는 강력한 허리회전과 상체근력을 바탕으로 크고 힘찬 스윙을 했다. 임팩트 후 방망이 헤드가 머리 위까지 올라갔다가 마지막엔 땅바닥까지 떨어지는 ‘업스윙’이었다. 지난해 박병호 홈런의 평균 비거리는 123.4m. 2003년 56홈런을 때린 이승엽(39·삼성)의 평균 비거리(117.8m)보다 5m 이상 공이 멀리 날아갔다.

 박병호는 홈런 수를 늘리는 것보다 헛스윙을 줄일 방법을 찾았다. 무거운 배트를 쓴다는 건 스윙 폭을 줄이고 임팩트 때 힘을 더 싣겠다는 의미다. 스윙 메커니즘이 달라질 정도는 아니지만 배트 무게 10g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타자로서는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비거리 140~150m의 초대형 대포를 쏘아올리는 박병호의 괴력은 지난해 외신에도 소개된 바 있다. 박병호는 올 시즌이 끝나면 해외진출 자격을 얻는다. 메이저리그는 항상 그의 파워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빅리그급 투수들과 싸워 이기는 건 홈런 비거리와 다른 문제다. 지난해 박병호는 삼성 밴덴헐크를 상대로 15타수 3안타(2홈런)에 그쳤다. NC 찰리를 맞아서는 8타수 무안타, SK 김광현에게는 8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밴덴헐크나 김광현 등 파워피처를 상대할 땐 가벼운 배트가 밀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박병호는 조금 더 무거운 무기로 맞서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아직 에이전트도 선임하지 않았다”면서 “강정호(28·피츠버그)처럼 구단과 상의해 진행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나와 팀을 위해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장석 넥센 대표는 “강정호에 이어 박병호가 넥센의 두번째 해외진출 사례가 될 것”이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염경엽(47) 넥센 감독도 박병호의 성공을 돕기 위해 그를 3루수로 기용할 생각도 하고 있다. 거포 1루수가 많은 메이저리그에서 ‘1루수 박병호’로 경쟁하는 게 유리할 게 없다는 것이다. 박병호는 지난주 미국 애리조나 캠프에서 치른 두 차례 청백전에서 3루수로 나와 홈런 두 방을 날렸다. 염 감독은 “3루수 김민성이 빠질 경우 박병호를 3루로 내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병호는 “3루수를 해보니 재밌다. 그런데 내가 3루수로 나서면 팀이 큰 위기 아니겠는가. LG 시절(2006년) 몇 차례 3루수로 뛴 적이 있지만 아주 오래전 일”이라며 웃었다. 메이저리그 도전은 수비위치가 아닌 타격으로 승부를 보고 싶다는 뜻으로 들렸다. ‘20g의 승부수’를 던진 그는 새 방망이를 계속 만지고 있었다.

오키나와=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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