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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할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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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금까지 보아왔던 수많은 죽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의 죽음이 있다. 한 분은 응급실에서, 또 한 분은 중환자실에서 만난 분이다. 그분들의 죽음은 마치 드라마처럼 아주 명확한 영상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분들을 보면서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성장은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계속되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응급실에서 만난 분은 이미 집에서 임종을 맞고 온 할머니였다. 자녀들이 평화로이 어머니의 시신을 모시고 왔는데 그분은 하얀 소복을 입고 버선까지 신고 계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면서 흰 한복을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드셨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밤에는 스스로 한복을 입고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또 일생 동안 아주 성실하게 가정을 일구고 자신을 정리하며 사셨던 분이라고 하였다. 그분이 어찌나 곱고 단정하게 죽음을 맞이하셨는지 마치 잠드신 것처럼 보였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다른 한 분은 간암 말기 환자였다. 얼굴이 황달로 노랗게 변했고 복수가 차서 숨이 가빠 코로 산소를 공급받고 여러 처치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셨던 중년의 남자다. 그분은 죽는 순간까지 화가 나서 소리치고 욕을 하시던 분이었다. 평소 그분을 찾아오는 방문객은 거의 없었고, 임종 당시 뒤늦게 나타난 부인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이런 말씀을 건네셨다. "살아생전 술과 노름만 좇고 바람만 피우더니! 어느 누구 하나 와서 슬퍼하는지…"하면서 한숨을 토해내셨다.

죽음에 대해 연구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인물이다. 사람들은 다음의 순서로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거부.분노.타협.우울, 그리고 마지막에는 수용의 단계를 거치면서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단계를 다 거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성장한다는 말이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성장을 의미한다.

수도자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끝 기도 시간에 바치는 기도 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전능하신 천주여,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하루하루, 일 년, 이 년, 그리고 전 인생 안에서 우리가 추구하고 바라는 성장 가운데 우리는 얼마나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갈까?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죽음을 평화로이 수용하고 가족과 이웃의 축복을 받으면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건너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전 생애는 성장으로 열린 길이다. 그 성장 안에는 그림자처럼 죽음도 함께 따라다닌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죽음은 마지막 성장점을 향해 함께 가는 것이다. 최선의 삶을 살다가 죽음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지막으로 이웃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네고 떠나는 여행객처럼 아름답고 빛이 난다.

배 마리진 수녀 착한 목자 수녀회 소속 한국틴스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