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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체크용' 의총만 있는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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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일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현일훈
정치부문 기자

‘24일 오전 9시 국회 246호 정책의총. 안건은 김영란법안과 복지재정.’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2일 오후, 국회 본청 2층의 새누리당 당직자 책상 위엔 이런 글귀가 적힌 문서가 놓여 있었다. 종이에 적혀 있는 안건은 정치권의 당면 현안이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세금과 복지 문제, 김영란법안과 같은 중요한 이슈에 대한 정책의총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따른 당 차원의 후속 조치이기도 했다.

 정책의총은 같은 당 의원들이 모여 현안에 대한 이견을 좁혀가는 회의체다. 당 관계자는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주요 과제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원들이 모여 터놓고 의견을 나눠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김영란법을 2월 국회에서 처리할지, 또 논란이 되고 있는 복지재정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 당내 의견을 모아볼 계획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정책의총 소집 계획이 없던 일이 됐다. 당 사무처 관계자는 “결론이 안 날 게 뻔할 뿐만 아니라 당내 분란으로 비칠 수 있어 의총을 취소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김영란법안을 두고 좌충우돌할 것 같아 순연시켰다”며 “복지재정 문제도 복지를 줄일지, 증세로 갈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오히려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정책의총에 참석할 의원 숫자가 부족했다고 말하는 당직자도 있었다.

 새누리당은 2012년 19대 국회가 시작된 이후 모두 126차례 의총을 열었다. 이 중 100여 차례는 본회의 직전 소집한 ‘출석체크용’이거나, 일사불란하게 당 지도부의 지시사항을 전하는 ‘지령 하달용’이었다. 지난 12일과 16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 처리를 위해선 총 네 차례의 긴급 의총을 열었다. 소속 의원 155명의 표를 단속하기 위해서였다.

 반면에 정책의총이 열린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한 정책통 의원은 “내 기억에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세월호 인양 대책 같은 현안에 대한 대응 방향을 정책의총을 통해 결정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야당은 현안만 터지면 의총을 열어 밤을 새워서라도 의견을 모으는데 새누리당은 표단속이나 하려고 모이는 게 의총인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해 3월 창당한 뒤에만 공식적으로 49차례의 실질적인 의총을 했다.

 이런 와중에 또다시 정책의총이 무산되자 “정책의총조차 못하는 당이 부끄럽다”는 말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압도적 의석 수를 갖고도 의총조차 못 여는 여당의 현실이 참으로 한심하다”고 자조했다.

 논란이 무서워 의총조차 못 여는 여당. ‘낮잠 자는 초식공룡’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현일훈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