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나는 반가사유상의 수줍은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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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커다랗게 보니 더욱 아리땁다. 수줍은 듯 눈을 살포시 감고 고개를 앞으로 살짝 숙인 자태에서 잠시나마 속세의 번뇌를 잊는다. 편안하게 다문 입술은 또 어떤가. 턱 밑에 살짝 갖다댄 손가락도 둥글어 정감이 넘친다. 국보 78호 '금동일월식삼산관사유상(金銅日月飾三山冠思惟像)'이다. 흔히 '반가사유상'이라 불린다.

국보로 지정된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은 두 개다. 좁은 어깨, 가는 허리 등 섬세하고 부드러운 여성미가 일품인 게 있고(78호), 풍만한 얼굴에 양 눈썹에서 콧마루로 흘러내린 선이 시원해 어린 소년의 모습을 연상키는 게(83호) 있다. 후자는 '금동연화관사유상(金銅蓮華冠思惟像)'이다.

두 유물은 지난달 28일 개관한 새 국립중앙박물관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박물관 관람 코스의 백미로 꼽히는 국보 83호는 단독전시실에 따로 '모셔지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높이 1m 남짓한 반가사유상을 정밀하게 감상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최근 발간된 '반가사유상'(민음사 발간) 도록은 각각 한국불상의 남성.여성미를 대변하는 두 문화재의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가로 440㎝, 세로 297㎝의 큼지막한 판형에 두 반가사유상의 전후좌우를 고루 재현했다.

"구원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존귀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구현했다"는 강우방 이화여대 초빙교수의 말처럼 초월적 '신'이 아닌 사색하는 '인간'의 전형을 엿볼 수 있다. 불상의 전체적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없었던 기존 도록의 갈증을 시원하게 달래준다.

김홍도의 '풍속화첩'(보물 527호)을 원본의 90% 크기로 감상할 수 있는 도록 '단원 풍속화첩'도 동시에 나왔다. 책에 다섯 군데 구멍을 내고 이를 종이 끈으로 꿰맨 우리 고유의 '5침안정법(五針眼訂法)'을 사용했다. 서당.논갈이.활쏘기.씨름.행상.대장간 등 단원의 풍속화 25점을 실었다. 그림마다 박지원.박제가.정약용 등 18세기 학자들이 조선의 풍속을 일러주는 글을 곁들였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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