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형처럼 되고 싶나요? 그럼 영어 공부도 열심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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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강사(맨 오른쪽 여성)의 영어 강의를 듣던 15세 이하 축구대표선수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파주=최원창 JES 기자

"축구 선수들은 자신감을 가져야죠. 자신감은 영어로 콘피던스예요."

4일 오후 8시 파주 축구국가대표훈련장(NFC) 1층 대강당. 고된 훈련을 마치고 영어 교재를 펴든 20명의 눈망울이 빛났다. 이들은 16세 이하 아시아 청소년선수권대회 지역예선(11월 13~17일)에 대비해 지난달 13일부터 파주 NFC에서 합숙하고 있는 U-15 청소년대표팀(감독 박경훈) 선수들이다.

이들은 월.수.금요일 오후 8시부터 1시간 동안 듣는 영어수업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이날 낮에 용인 신갈고와 30분 3피리어드(90분) 연습 평가전을 치른 뒤라 피곤함이 몰려들 만하지만 모두들 신나는 표정으로 노트를 들고 대회의실에 앉아 김수정(38) 강사의 강의를 들었다.

이들은 2007년 한국에서 열리는 17세 이하 세계청소년대회를 위해 구성된 엘리트 꿈나무들이다.

하지만 한 달 이상 합숙훈련을 계획하다 보니 학교 수업을 장기간 듣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다. 파주 NFC에 격려차 들른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이 이들의 사정을 들은 후 영어를 가르치자고 즉석 제안, 영어 수업이 이뤄지게 됐다.

처음에는 영어에 능통한 축구협회 직원이 교육을 맡았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자 아예 전문 강사를 모셔왔다. 예전 같으면 공부한다고 하면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자발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별도로 영어 노트를 마련하는 열정을 보였다.

박경훈 감독은 "어린 나이지만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것 같다"며 "18세 대표팀과 비교해도 세대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배천석(포항제철중).김의범(원삼중) 등이 빼곡히 필기해 놓은 영어 노트를 살펴보면 감탄사가 절로 날 만큼 꼼꼼하다. 이들은 매일 박 감독에게 배운 전술을 적어두는 것은 물론 영어 수업 내용도 빼놓지 않는다.

김 강사도 "첫 수업부터 열의가 느껴져 수업할 때마다 선수들을 진지하게 쳐다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이 영어 수업에 흥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어려운 문법이 아니라 축구선수들에게 필수적인 축구용어를 중심으로 수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버(over)'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오버헤드킥'이라는 축구 단어를 살펴본 뒤 오버 이트(over eat).오버 액션(over action) 등의 관련 단어들을 설명한다. 또 'the game is over'같은 문장으로 범위를 넓혀 간단한 생활영어를 익히는 방식이다.

선수들은 평소 자신들이 무심코 써왔던 용어의 뜻과 발음을 알 수 있는 데다 회화도 익힐 수 있어 학교 수업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주축야독(晝蹴夜讀)'의 재미에 빠져 있는 이들은 13일과 17일 파주 NFC에서 마카오와 일본을 상대로 아시아청소년선수권 대회 예선전을 한다.

파주=최원창 JES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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