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속에 담긴 통렬한 풍자|불 어릿광대 『달링 달링』을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연극하면 흔히 문학적이며, 예술적이며, 그래서 심각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따분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에 온 「마크로마」극단, 프랑스 어릿광대들의 공연은 그러한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충격적이면서 신나는 무대였다.
세명의 어릿광대가 끊임없이 변신하면서 다섯 개의 에피소드를 1시간 40분에 걸쳐서 열연한다. 그들은 때로 감상적으로 선량해지는가 하면 흉포해지고 도전적이 되며, 때로 바보스러운가 하면 매력을 풍기고 뽐내며, 때로 유쾌하게 설치는가 하면 우울해 지는, 걷잡을 수 없는 변신을 통해서 그들의 환상적인 얘기를 역어 나간다. 그들은 마치 만화책에서 갓 뛰어나온 인물들처럼 무대 위에서 멋대로 놀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관객을 웃기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특유의 연극적 화술로 현대인의 꿈의 좌절과 변질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를테면 피아니스트인 사내는 그를 사랑하는 여가수가 난장이인 것을 괴로워하는데 막상 그 난장이 여가수가 죽고 그의 소원이 이루어져 부활한 여인은 거인이 되어, 상대적으로 피아니스트는 그 자신이 난쟁이가 되고만다.
이 우화에서 피아니스트는 모든 것을 자로 재려고 하나 사랑을 자로 잴 수는 없으며 거인 여자의 손에 매달려 그는 만족한 표정이나 실은 처절한 꿈의 좌절을 우리는 목격할 뿐이다.
또 바닷가에서 두 사내가 그들의 여자에 대한 허망한 꿈을 쫓고 있을 때 찬란한 새가 무대에 날아와서 관객들을 황홀하게 한다. 그러나 박쥐가 된 두 사내가 그 꿈의 새의 아름다운 깃털을 하나씩 뽑아 갈 때 우리는 박제가 되어 가는 우리의 꿈의 서글품을 통감한다. 그들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만 동시에 당황케 한다.
이밖에 그들은 무대에서 어린애도 낳고 꼽추가 되기도 하고 바다의 물살이 되기도 한다. 시적이고 환상적이고 기발하고 때로는 흉측스럽기도 한 그들의 어릿광대 놀이를 보며 우리는 실컷 웃을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변질된 꿈을 짊어지고 꼽추가 되어 가고 있는 우리들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하는 것이다. -김정옥

<중앙대 교수·연출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