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수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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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냇물을 위로 흐르게는 할 수 없다. 물은 평생 아래로 흐르기 때문이다. 민생도 그렇다. 위로 흐르지 않고 아래로 대중속으로, 서민의 품안으로 흐른다. 물의 생태가 균형을 이룩하기 위해서 낮은데로 흐르는 것과 같이 민심도 균형을 원해서 높은데 보다는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다.
민심이 흉흉하다는 말은 민생이 고르지 못하고 고생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오, 민심이 좋다는 것은 모두가 균형있게 생활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돈만 많다고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고루고루 가난해서 산다고 하면 불평은 없을 것이다. 마치 괸 물에 소리가 들리지 않듯이 안정된 민생에 불만의 소리가 있을 수 없다.
요새 민심 수습이란 말이 자주 신문지상에 나타나고 있다. 문자 그대로 말한다면 흩어진 민심을 한곳으로 모둔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는 민심은 안정된 것 같다. 불행한 사건이 국내외적으로 일어났다고 해도 국민은 일시적 흥분이 가신 뒤에 이제는 비교적 냉정한 자세에서 생업에 정진하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복싱·핸드볼·태권도, 그리고 양궁에 있어서 연달아 승전보가 울리어 오고 있으니 민심은 환희에 들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양궁에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월봉 85만원을 준다고 하니 경제적 여유도 만만한 것 같고 또 세계적 골퍼 「아놀드·파머」를 초청하여 시범을 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대단한 것 같다. 이러한 형편에 있는 국민에게 공연히 민심 수습이라는 명목하에 위구심과 위축심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불화합을 들어 국론을 수습하겠다고 해도 그것도 국민들의 관심 밖의 일이니 공연히 민심을 뒤숭숭하게 할 필요가 없다. 만일 민심을 수습한다는 구실하에 어떠한 강권이 발동된다면 내면적으로 민심은 더욱 소란·불안의 도가니로 쏠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때 민심 수습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볼 필요를 느낀다. 우선
민심수흡의 방안으로서 강권 발동을 생각할 수 있다. 생각이 아니라 대개의 국가는 강권으로써 민심울 한곳으로 수습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이것은 통치자가 강권으로 민심을, 좋게 말해서 교도하는 일이오, 나쁘게 말해서 통치자의 의사에 불화합하는 민심을 억압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는 2차대전 때에 전체주의 국가에서 보아 왔고 더구나 공산국가나 이에 유사한 국가에서 지금도 강권으로 민심을 지배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이러한 수습 방안은 강권이 존재해 있는 동안만 효과가 있을 것이오, 강권이 흔들리게 되면 바람부는날 보자기에 싸인 모래알이 흩어지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단합된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외부의 힘이 약해질 때를 기다리는 폭발력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항구적인 민심수습책은 유교에서 말하는 덕치주의다. 이것을 전자 전자 패도와 구별해서 왕도라고 부른다. 맹자는 양나라 혜왕에게 인자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하라고 권면했다. 눈에 보이는 이를 구하지 말고 인과 의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이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어질게 되면 그 어버이를 버릴 사람이 어디에 있겠으며, 의로와지면 그 임금을 뒤로 할 백성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하였다. 또 맹자는 설유하기를 옛날 무왕은 어진 임금이기 때문에 정원에 망대를 쌓을 때 모든 백성(서민)이 자발적으로 와서 빨리 쌓았다고 했다. 문왕이 얼마나 어질고 착한 군주였는지 그가 정원을 거닐면 사슴이 부복하고 못가에 가면 고기가 반겨 뛰놀았다고 했다.
또 왕이 어질면 백성도 모두 어질게 되고 왕이 의로우면 백성도 따라서 의로와 진다고 말했다. 소국이라도 왕이 인정을 베풀면 만민이 다 모여들어 대국이 된다고도 말했다.
맹자는 다시 양혜왕에게 『살생을 좋아하지 않은즉 천하 백성이 목을 길게 빼어 그런 임금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렇다면 민심의 돌아감이 마치 물이 아래로 흐름과 같다』고 말했다.
이로써 보면 민심은 통치자가 수습하는 것이 아니고 통치자의 인의를 향해서 민심이 스스로 돌아간다고 할 것이다. 강권으로 민심을 돌리려 할 것이 아니라 인의의 정치로써 민심이 저절로 통치자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야 멋있는 일이다.
앞서 민심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말했다. 흐르는 물은 저수지를 만들어 관개나 발전에 사용하게 된다. 하나의 물줄기는 힘이 없지만 여러 물줄기가 저수지에 모이면 무한한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그와 같이 통치자는 가장 겸허한 자세로 맨 아랫목에 민심의 저수지를 파고 여러 갈래의 민심을 모이게 하여 그 무한한 민심의 에너지를 비상시에 대비시키면 국민들도 달갑게 이에 응하게 될 것이다. 모든 좋은 일이나 험한 일에 통치자가 섬기는 아음으로 앞장서면 민심은 스스로 통치자에게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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