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하오 전격인사가 있던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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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4일 하오5시가 훨씬 지나서부터 재무부가 술렁대기 시작했다. 김만제재무부장관이 청와대를 다녀온 뒤 주병국차관을 비롯한 이재국직원들이 장관실을 드나들며 약간 얼굴이 상기되었다.
「10·24암」 은행인사의 내용이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한 것은 재무부 관계자들이 해당 은행장에게 전화통보를 한 6시쯤이었다.
이보다 앞서 주차관이 한은에 가 하영기총재에게 인사내용을 알린 뒤 황급히 되돌아왔다.이 자리에서 하총재가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총재는 자신이 이렇게 빨리 물러날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총재경질」 의 폭탄전언은 곧 임직원들에게 알려져 모두다 일손을 놓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김장관의 이번 인사는 취임이후 주로 정책당국자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골격이 잡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장관은 지난 23일 일요일 상오에 출근, 새로 자리에 앉힐 사람들에 관한서류를 검토했다는 후문이다.
다음은 10·24 은행인사내용이 알려진 직후 가졌던 김만제 재무부장관과의 대담내용이다.
-전격적으로 은행장 인사를 단행한 이유는?
『전반적으로 전열을 가다듬어서 뭔가 달리해야 되겠다.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지 않은가』
-I특수상황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은행이 큰 손실을 입고 있다. 은행돈이 안에 뜯겨나가고 밖에 뜯겨나가고 있어 이런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큰일난다. 그렇다고 아래 직원들만 갈아치워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비능률적인 금융산업을 쇄신하기 위한 하나의 전예로 삼겠다. 이런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한은총재까지 물러나는 이유는?
『한은이라고 해서 무풍지대가 될 수는 없다. 지난 2년 동안에 여러가지 금융사건, 예컨대 이·장 어음사건이나 명성사건, 영동개발진흥사건등 소용돌이 속에 파묻혀 왔다. 중앙은행도 이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이 없는건 아니다』
-일종의 문책인사인가?
『도의적인 책임을 물은 것이다』
-하영기총재가 김장관에게 직접 사표를 제출했는가?
『오래전부터 간접적으로 사의를 표명해왔다』
-한은으로부터 은행감독원의 분리와 기능강화를 위해 총재를 경질한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금융계 인사는 또 있는가?
『이것으로 일단 마무리 되었다. 더 이상은 없다. 오해없기를 바란다』
-이번 인사는 김장관이 취임 이후 구상한 것인가, 아니면 관계자와의 협의에 의한 것인가?
『여러모로 생각해왔다. 심기일전해서 다시 해보자는 뜻이다. 사실은 지난번 각료이동에 따라 장·차관급에 해당하는 한은총재등 국책은행 인사도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오래 끄는 것 보다는 빨리 하는게 나을 것 같아서 이번에 단행하는 것이다』
이번 국책은행장은 모두 과거 경제기획원이나 재무부 출신 관료들인데 그들이 계속 기용되는 이유는?
『관출신 또는 은행출신등 출신성분을 따질 필요는 없다. 이분들도 모두 오랫동안 금융에 몸담아 왔던 사람들이다.』
-앞으로 시중은행장은 해당 은행출신으로 메울 예정인가?
『가능하면 그렇게 해야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밖에서 사람을 데려와 시중은행장에 앉혀 놓았으나 한군데에서도 재미를 못 보았다. 기존 시중은행에서 마땅한 사람을 구할수 있다면 그 사람을 은행장으로 앉혀서 지속성을 갖도록 해야한다고 본다』
-이번 인사는 한은총재를 지낸 신병현부총리와도 협의가 됐는가?
『나중에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안영모한일은행장이 갑자기 사표를 제출한 것은 금융사고와 관련된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창구사고는 없으니 오해 없길 바란다. 다만 일신상의 이유일 뿐이다』
-그저 일신상의 이유라고만 설명한다면 듣는 사람으로서는 선뜻 납득이 안간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일 때문이다』
○…하영기한은총재는 24일 하오 주병국차관이 찾아오기 직전에도 스위스·이탈리아 은행장의 비방을 받고 환담했으며, 총재실은 총재실대로 25일 상오에 있을 「저축의 날」 행사에 대비 하총재의 개회사를 작성해 보도자료를 돌리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전격 경질이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한은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한은 일부에선 하총재가 지난번 감독원 분리소동이 났을 때 그만뒀으면 훨씬 좋을 뻔 했다는 「실기론」도 나오고 있다.
최창락 산은총재는 며칠전 김만제재무장관을 만났을때 자신의 자리바꿈을 들어 알고 있었다는 후문.
최총재는 따라서 24일 하오6시 조금 넘어 실재무차관의 전화통보를 받고도 전혀 놀라는 빛이 없이 측근에게 『오늘은 재무부 들어갈 일이 없을것 같다』고 이르고는 평상시와 같이 퇴근, 원래 예정대로 주변 친지의 상가에 문상을 갔다.
송병숙 국민은행장은 자신의 은행감독원장 내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듯 재무부로부터 은행장실로 전화통보가 왔을때 근처 이발관에 있다가 급히 재무부로 들어갔다.
국민은행장에 내정된 박종석은행감독원 부원장의 경우, 지난 주초까지만해도 본인은 물론 주위에서도 다들 국민은행이 아닌 모금융기관장으로 승진할 것으로 알고 축하인사까지 받기도 했다.
한편 조흥은행장의 후임으로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지방은행장이 물망에 올라 있었으나 결국 내부승진에 의해 빈자리를 메운다는 「뚜껑」이 열려졌고, 한일은행 안영모행장도 자신의 퇴임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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