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군 의료체계의 총체적 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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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역 보름 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숨진 노충국씨의 군내 진료기록부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노씨가 처음 진료를 받은 지 3개월 뒤 노씨 부친이 진료기록부를 요구하자 담당 군의관이 '내시경 소견상 악성 종양 배제 어려워, 환자에게 설명'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는 것이다. 초기진단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고귀한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아울러 책임 회피를 위해 버젓이 서류까지 조작하는 군 의료체계의 총체적 부실과 기강해이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한 군의관의 어처구니없는 탈선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군의 생명인 보고체계의 붕괴 등 군의 취약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중대 사태다. 이 군의관은 진료 날짜를 기록하는 접수 직인 위에다 문제의 문구를 끼워넣었다. 누가 봐도 의심을 살 만했다. 그러나 그가 범죄를 인정하기 전까지 군당국은 그의 진술만을 믿었다. 장관까지도 "의무당국은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엉뚱하게 해명했으니 이제 무어라고 변명할 텐가. 군기가 살아있는 군대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엔 사건 축소에만 급급하다 문제가 커지자 이런저런 호들갑을 떠니 뒷북 행정이란 비판을 듣는다.

부대 차원에서의 조직적인 은폐 시도와 직무유기 여부 등 진상을 철저히 조사한 뒤 구멍난 군 의료체계와 기강확립에 대한 특별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인원.장비 등 군내 의료 수준은 물론 환자 사병이 눈총을 받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인지, 의료 환경에 대해서도 새롭게 점검.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윤광웅 장관 취임 이후 군내에선 각종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윤 장관은 그동안 '문민화''전시작전권 회수' 등 국방개혁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방향은 맞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재원 소요 등으로 효율성과 실현가능성에서 의구심이 드는 이런 '장밋빛 과제'에만 국방부가 지나치게 몰두하는 게 아니냐는 점이다. 개혁을 외치기에 앞서 장병들의 엉뚱한 희생부터 막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