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산책] 프로야구 MVP 손민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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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만큼 더 하겠습니다. MVP에 이어 롯데의 우승을 꿈꾸는 손민한. 철봉에 매달린 그의 표정이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그것이다. 강정현 기자

부인 김민정씨와 딸 가은이.

프로야구 선수로서 이를 수 있는 정점(頂點). 최우수선수(MVP)다. 그 자리에 올라섰다. 앞으로는 뭐가 더 있을까. 그 자리에 선 손민한(롯데)을 만났다. 그리고 보자마자 물었다. 야구선수로서 더 하고 싶은 게 뭔가?

"첫째는 롯데 유니폼을 입고 선수생활을 마무리 짓고 싶어요. 둘째로는 음…, 마찬가지로 롯데 유니폼을 입고 꼭 우승반지를 끼고 싶고요. 부산 팬들이 기뻐하는 걸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정말 나중에는 롯데 유니폼을 입고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부상 없이 끝까지 하고 싶은 거죠. 워낙 부상에 뼈저리게 아파했고, 그 고통을 잘 알아 또 다치면 이제는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아요."

온통 롯데 얘기다. 그만큼 롯데는 손민한의 전부다. 그럼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하고 싶은 건?

"딸 가은이(3)가 좀 더 커서 아빠가 훌륭한 야구선수라는 걸 알 때까지 야구를 해야죠. 아이가 그만큼 알게 되면 아빠 노릇은 어느 정도 한 거라고 봐요. 그리고 더 나이가 들면 그동안 고생한 아내와 가족을 위해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그렇게 되려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겠죠."

프로야구 9년차. 그리고 최우수선수. 손민한의 재산은? "5억에서 6억 정도? 정확히는 잘 몰라요. 부모님께서 관리해 주시니까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봐야죠. 돈 많이 벌려면 FA가 되거나 해외진출 해야 되는데, FA는 3년 남았고…. 한번은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야죠. 해외진출은 인연이 별로 없나 봐요. 이번 시즌에도 끝나고 나서 일본 두 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러나 지금은 자격이 없어 못 가죠. 구단에서 예전 선동열.이종범 선배처럼 허락해 주면 몰라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고…."

손민한과 해외진출. 그에게는 묻혀버린 해외진출의 아픔이 있다. 고려대 4학년 때. 96년이었다. 그때 주가가 최고였다. 국내 구단의 지명을 받지 않아 신분도 자유로웠다. 노모 히데오를 LA 다저스에 입단시킨 세계적인 에이전트 돈 노무라가 손민한을 접촉했다. "거의 다 됐죠. 제가 사인만 하면 됐으니까요. 다저스 관계자가 한국에 들어와 그 자리에서 사인을 하기로 했는데 일주일 전에 마음을 바꿨어요. 그런 포기는 빠른 편이죠."

무슨 소린가. 모든 야구선수의 꿈.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스스로 '못 하겠다'는 마음을 먹다니. 손민한이 겁쟁이란 말인가. "어깨가 아팠어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아팠는데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버텨 왔었거든요. 투수가, 자기 어깨는 자기가 잘 알죠. 공 던지고 이틀 정도 지나면 원래 느낌이 와요. 근데 그때는 일주일이 지나도 느낌이 안 오는 거예요. 제 스스로 '이건 수술을 해야겠구나'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죠. 그런 어깨를 가지고 미국에 도전한다는 건 무모한 일이 분명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제가 먼저'한국에 남겠다'고 해버렸어요."

그런 사연이 있었다. 손민한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지 '못한'게 아니라 '안 했던' 이유가. 그는 프로에 입단한 97년 10월 미국에 건너가 어깨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3년간 재활했다. MVP 시상식장에서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재활이 끝난 2000년, 그는 롯데의 주축투수가 됐다. 그리고 그해 12승과 함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얻었다. 아내(김민정)를 만난 것.

"여름에 친구들과 시내 카페에 갔다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를 봤죠. 제가 우겨서 합석했고, 그날 바로 '마음에 든다. 사귀자'고 했어요. 시즌 중이라서 전화 통화만 계속했는데 그 통화 속에서 서로를 알고, 사랑을 느꼈어요. 이듬해 결혼했고, 지금 너무 좋아요."

아내 자랑에 침이 마른다. "제 아내가 뭐가 최고냐 하면요. 야구를 몰라요. 아니, 모른 척해요. 처음엔 승리투수가 되고 나서 집에 가도 축하는커녕 물어보지도 않아서 섭섭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다 알면서 내색을 안 해요. 지고 나서 안타까워하면 저도 속이 상하는데 그게 없잖아요."

이태일 기자 <pinetar@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손민한은

▶생년월일=1975년 1월 2일

▶체격=1m80cm, 85㎏

▶가족=부인 김민정씨와 1녀(가은)

▶경력=대연초-대천중-부산고-고려대-97년 롯데 입단. 2000년 시드니올림픽 국가대표(동메달), 2005년 다승.방어율 1위. 최우수선수(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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