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개성공단 제품, 한국산 인정 못 받는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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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국대사가 "미국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산으로 간주해 수입하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손꼽히는 한반도 전문가다.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운명은 실제로 원산지 표시 문제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그동안 개성공단에 컴퓨터 등 전략물자 반출입은 미국과의 교섭으로 숨통이 틔었다. 남은 숙제는 개성공단 수출품의 원산지 표시다. 국제 관례상 '북한산'으로 표기해야 한다. 지금은 미국.일본 등이 북한산 제품의 수입을 금하거나 높은 관세율을 매기고 있어 사실상 수출이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체결된 한.싱가포르와 한.유럽자유무역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했다. 다른 분야에서 추가로 양보하는 대신 "한국산 원자재를 60% 이상 사용하면 한국산으로 간주해 무관세 혜택을 달라"는 우리 정부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기류가 바뀌고 있다. 지난달 동남아국가연합과의 FTA협상에서 상당수의 회원국들이 한국산 인정에 반대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산지 규정은 최종 가공이 이뤄진 지역을 기준으로 한다"며 "북한 영토에서 만든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거부했다.

정부로선 개성공단 원산지 표시가 '한국산'임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개성공단이 성공하면 남측 기업은 인건비를 절감하고 원부자재 공급을 확대할 수 있다. 북측도 외화 획득과 산업인프라 구축 효과를 거두게 된다. 매년 남북한이 누릴 경제적 효과만 2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일본과의 FTA협상은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점에서도 헌법의 영토조항을 손질해 북한 땅을 인정하자는 통일부 장관의 발언은 신중하지 못하다. 그래 놓고 우리가 한국산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칫 미국과 일본에 빌미만 줄 수 있다. 범정부 차원의 치밀한 공조와 고도의 협상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