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해결 위한 현실적 대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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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원의 사건처리 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는 2006년, 2009년에 이어 세 번째다. 10년 사이에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게 상고제도 개선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반수가 넘는 국회의원이 이번 국회에 상고법원 도입 법안을 제출한 이유는 과도한 사건 수로 기능이 약화된 상고심의 정상화를 통해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다. 1981년 대법원의 사건 적체를 해결하기 위해 상고허가제가 시행됐지만 국민의 ‘재판 받을 헌법상 권리’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90년에 폐지됐다. 그 이후 상고사건이 폭증해 문제가 생기자 94년 심리불속행제도를 도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법원 접수 사건은 2006년 2만2946건, 2009년 3만2361건, 2014년에는 약 3만8000건에 육박한다. 2014년 기준 대법관 1인은 연간 3166건을 처리해야 한다. 이것은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법령의 해석·통일이라는 정책법원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국민의 권리구제 기능도 매우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급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최근 10년 사이 국회와 사법부가 중심이 돼 세 차례에 걸쳐 개선법안을 발의하고 논의해 온 것이다. 대법원의 업무처리 적체와 기능 약화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국민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국민의 입장에서 대법원의 사건적체 개선의 필요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시점에 과반수 넘는 국회의원이 상고법원 도입 법안을 발의한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상고법원의 도입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가. 이를 긍정하려면 헌법적 정당성과 제도적 우월성이 있어야 한다.

 먼저 헌법적 정당성을 보면 헌법 제101조 제2항은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설립되는 각급 법원인 상고법원은 대법원의 최고법원으로서의 기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권리구제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다. 대법원이 일부 기능을 상고법원에 위임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전혀 문제가 없다. 국민의 권리구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최고법원 고유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일정 사건을 상고법원에서 처리하도록 분쟁해결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것이다. 상고법원 도입은 헌법에 합치한 분쟁해결의 선택과 집중이다. 상고법원에 대한 위헌 주장은 국민의 실질적인 권리보호와 현실을 무시한 다소 무책임한 발목잡기다. 둘째, 제도적 우월성이다. 우리는 대법원의 이원적 구성, 고법상고부제, 상고허가제, 심리불속행제를 실제로 시행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고법상고부안이 두 차례나 입법발의 후 폐기됐다. 대법관 증원 방안도 2010년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논의됐으나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제도상 상고허가제가 미국·독일·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고 있는 이상적 방안이지만 이미 90년 폐지된 적이 있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다시 시행하기는 어렵다. 또한 대법관을 사건 수 증가에 맞춰 증원하면 분쟁해결 구조의 최상층부가 비대해지고 전원합의체의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 최고법원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될 것이 명백하다. 대법관이 50명으로 늘면 국회 청문회가 1.4개월에 한 번씩 치러져야 한다. 이러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상고법원이 상대적으로 다른 제도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그에 대응하는 법무부·검찰 조직의 보완이 필수적이고 업무 효율성을 위해 대법원과 상고법원은 같은 지역에 두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다만 4심제라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고법원 사건의 대법원 이송이나 재심을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현시점에서 대법원의 사건 적체를 해소해 대법원의 기능 정상화와 국민의 실질적인 권리구제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현실적인 대안은 상고법원의 도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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