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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0)제80화 한일회담(39)-선박목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일본측이 SCAP령에 의한 한국국적 선박 반환의무를 시인하면서도 『구체적인 이행여부는 한국측과 앞으로 협의하기에 달렸다』고 나오는데 대해 우리 대표들은 격분했다.
우리측은 『그런식으로 발뺌을 하려든다면 더이상 여기서 회담할 필요가 없으니 당장 대표를 1명씩 뽑아 연합군최고사렴부(SCAP)에 가서 과연 한국에 대한 반환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리자』고 윽박질렀다.
그러자 일본측은 「우리의 답변은 그런 의도가 아니다. SCAP각서에 의하면 의당 일본에 반환의무가 있고, 따라서 상대국인 한국에 대해서도 의무가 있다고 본다.19척의 반환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다만 개별적인 선박들에 관해 아직 여러 가지를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한것 뿐이다』고 한발 물러서는 것이었다.
또 일본측은 『우리가 제시한 19척외에도 한국은 추가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실제 내용과 범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지 않은가. 뿐만아니라 우리측 의제인(다)(라)항에 대해서 한국측이 설명청취조차 거부하는 것은 원래의 의제 합의정신에 어긋난다』고 유감을 표시해 왔다.그러면서 일본측은 일본내의 형편을 반사정조로 설명해 왔다.
한국국적 선박 반환문제로 일본 국내에선 선주들간에 적지않은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선주들이 매일같이 일본당국에 몰려와 진정이나 호소를 하고 심지어 반정부 항의소동까지 벌어지는 판이었다.
지금 당장 한국요구대로 19척에 대한 현황을 밝히고,가령 운항동결과 같은 조치를 취한다면 일본정부가 아무리 보전조치를 한다해도 선주들이 멋대로 주요장비나 부품등을 처분해버릴 우려가 있다는 얘기였다.그런 상황은 목록이 확정되지 않은 다른 배에도 번질지 모른다고 했다.미상불 그런면이 없지 않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우리도 회담의 원만한 진행이란 차원에서 강경자세를 다소 누그러뜨리고 일본이 제안한 의제 (다) (라) 항의 설명을 듣기로 했다.
아울러 우리는 그동안 갖은 어려움 끝에 파악한 19척외에 한국국적 선박의 추가목록도 일본에 수교했다.
지금이니 말이지만 일본측이 선박반환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라고 나오는데 대해 우리대표단은 한동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도그럴것이 해방전 우리나라의 선박은 대부분 이름을 표시하지않고 숫자나 기호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명단을 파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인들은 패전후 한국의 각 세관과 항구, 하역회사등에 비치한 선박서류들을 모두 불태워 버린뒤 선박을 끌고 갔기 때문에 한국국적 선박에 관한 근거서류는 거의 소멸되다시피한 실정이었다.
이런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일본은 시치미를 떼면서 『추가할 선박목록이 있으면 내보라』『당신들이 요구하는 선박의 구체적인 자료를 내놓아보아라』고 역공을 해오기도 했다.
그래서 정부는 회담을 진행시키는 한편 사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부산의 한 선박급수회사 창고에서 일본인들이 미처 태워버리지 못한 부산항의 45년8월∼9월분 선박급수일지 한벌을 가까스로 찾아낼수 있었다.
그야말로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반딧불을 발견한 셈이라고나 할까.
정부는 이 급수일지를 토대로 부산항 일대의 선박리스트를 작성해 부랴부랴 일본으로 공수해 왔다.
선박리스트를 받아쥔 우리대표단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고 반면에 여유만만하던 일본측이 크게 낭패한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때 작성된 선박리스트는 뒷날 한일회담에서도 결정적인 증거자료로 사용되었다.의제문제가 매듭지어지고 우리가 입수한 22척의 추가반환 선박목록을 일본측에 제시한데 이어 일본측도 그들이 내놓은 (다) (라) 항에 대한 설명과 함께 문제의 조선상선소속 선박 5척의 명단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일본측은 『주한미군이 한국내 연안화물의 긴급수송을 위해 선박의 대여를 SCAP측에 요청해 왔기 때문에 이들 5척의 선박을 일시 대여하게 된것』이라는 설명을 붙여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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