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일할 의욕 북돋워줘야죠"|신현확 전 총리가 말하는 충격 대응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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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석준부총리를 비롯해 많은 경제관로들이 한꺼번에 변을 당해 경제정책수행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에대해 부총리와 총리를 역임한 신현확씨(부)를 만나 가신분들에 대한애도의 뜻과 앞으로의 대응책을 들었다.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당장의 슬픔이야 시간으로 달랜다하더라도 너무 많은 인재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렸어요. 유가족들의 슬픔을 넘어서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인 까닭입니다. 특히 경제부문의 유능한 일꾼들이 한꺼번에 희생된 것은 정말 가슴아픈 일입니다. 생각할수록 원통한 노릇이에요-.』
신현확 전총리는 하도 마음이 무거워 비보를 전해들은 이후로는 문밖출입조차 싫어졌다며 힘들게 말문을 열었다. 가신분들중에는 그의 오른팔로 함께 일했던 분들도 적지않다. 『내가 부총리로 일할때 서부총리가 차관, 김수석이 기획국장, 김용한 과기처차관이 예산국장이었어요. 마침 당시 상황이 경제정책기조자체를 성장위주에서 안정쪽으로 틀기위해 심한 진통을 치러나가는 때였습니다. 이들이 바로 그 작업의 주역들이었지요.
누구하나 떼어놓고 봐도 정말 우수하고 능력있고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오직 일에만 매달린 사람들이었읍니다. 제각기 자기분야에서 소신과 이론를 가지고 거리낌없이 자기주장을 폈던 사람들이었어요. 모두가 장차 큰일들을 해낼 나라의 재목이었는데 그만-.』
경제란 한번 「세」가 형성되고 나면 꺾기 힘든법-. 잔뜩 달아오른 성장정책의 『세』를 꺾고 안정화시책을 표방하기까지에는 이들의 일치된 뒷받침없이는 불가능했을것이라며 신전총리는 안정화정책의 공로를 그들에게 전적으로 돌렸다. 『기술자로 말하자면 이나라 경제를 꾸려나가는데 꼭 필요한 초일류기술자들을 잃은 셈입니다. 그와같은 인재들이 어디 하루아침에 양성되는 것입니까. 20년·30년이 걸러야, 그것도 수백명중에서 한두명정도 나올까하는 그러한 엘리트중의 엘리트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언제까지고 당황해하며 슬픔에만 잠겨있을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들을 잃어버림으로해서 큰 구멍이 뚫린것은 사실이나 충분히 메울수 있는 구멍입니다. 우리경제의 기반이나 관료조직이 그럴만큼은 충분히 성숙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정작 중요한 것은 이번 참사를 통해 인재의 소중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깊이 깨닫는 일입니다.』
잃어버린 인재를 통해 그들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새겨보고 전환의 계기로 삼을수 있는 뼈저린 교훈으로 삼아야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유능한 관료란 지식만 가지고 되는것이 아니에요. 충분한 경험이 뒷받침되지못한 지식은 자칫 파행만 초래하고 일을 그르치기 십상입니다. 지식과 경험을 균형있게 갖추어야 유능한 관료지요.
그래야 살아 있는 행정을 펼수있는 것입니다. 가신분들을 더욱 안타까와하는 까닭도 그들이 어느누구보다도 지금까지 맡은분야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아왔고 이제 그 경륜의 꽃을 막 피우려할때 변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소중한 경험들을 몽땅 잃어버린것입니다.』
말끝을 채 맺지못하는 신전총리는 그들의 잃어버림을 슬퍼할수록 더욱더 인재의 소중함을 모두함께 깨달아야 한다고 몇차례고 되뇌었다. 『고인들은 그야말로 모범적인 관료있읍니다.우리가 만들어나가고자하는 직업관료사회·엘리트관료사회의 형성에 디딤돌이 됐던 분들이었읍니다.
관료의 유일한 생명선인 사명감에 자신들의 일생을 던졌고 헌신해온분들이에요.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당초 그들이 관료가 되고자 했던본래의 「이유」에 끝까지 충실했던분들입니다.』
관료주의를 가리켜 흔히들 나쁘게만 말하는데 올바른관료주의의 확립이야말로 우리사회가 당면하고있는 시급한 과제임을 그는 강조했다. 엘리트관료를 양성해나가고 그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일은 단순한 관료제도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경제의 유일한 자원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같은 나라를 보십시오. 엘리트관료층으로 행정체계가 꽉짜여져 있는한 정권이 아무리바뀐다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관료의 사명감이란 그냥 생기는것이 아닙니다. 정부고 기업이고간에 사회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들이 사명감과 자부심만으로 헌신할수있도록 흘러가야합니다.』
총리직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그지만 저절로 생겨나는 나라걱정이야 어쩔도리가
없지않느냐며 최근의 연속적인 불행한 사건들에 대해 말머리를 돌린다.
『역사적으로 볼때도 한나라 국민들의 기운이 일어설때는 모든 에너지가 집결되어 폭발적으로 뻗어나가는가 하면 쇠퇴할때는 있는 에너지도 분산되고 꺾여서 지리멸렬하는 법입니다.
세계의 절반을 통일했던 몽고의 당시 인구는 1백60만명정도에 불과했고 일본까지 세력을 떨쳤던 17세기 포르투갈의 인구도 1백50만명밖에 안됐어요.
결국 그적은 인구로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집결시켜서 전세계에 기운을 떨쳤던 것입니다.
그만큼 국민들의 사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최근에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사태로 인해 행여나 우리 국민들의 사기에 위축을 가져오지 않을까 그것이 무엇보다 걱정입니다.
사건자체에서 오는 충격과 술픔이야 어쩔도리가 없겠지요. 내자신만 해도 엄청난 충격을 받은터에 일반 국민들이야 오죽하겠읍니까.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여하히 훌훌 털고 일어서 하루빨리 극복해나가느냐 하는것입니다.
이런때에 국민들의 사기가 꺾인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신전총리는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겠느냐」는 질문에 한참은 시름에 잠긴 표정이었다가 찬찬히 입을 떼었다.
『어려운 일이 터진다고 계속 위축되고 경직되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우려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수록 맺힌 멍울을 어루만져주고 풀어나가는 처방이 필요합니다.
우선 정부든 민간이든 자발적으로 일해나갈수있는 분야와 폭을 넓혀나가는 작업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위축되기쉬운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 일할수있는 의욕을 북돋워줘야지요. 공무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시와 명령보다는 자율적인 권한과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관료들의 사고방식이 경직되기 시작하면 사회전체에 그것이 파급되게 마련입니다.
어려운때일수록 「긴장」보다는 「이완」이 중요하다는 역설을 잘 음미해봐야 할때입니다. 서로 생각이 달라도 큰소리로 떠들며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는 분위기가 필요해요.
예컨대 지난번 수입자유화를 둘러싸고 기획원과 재무부·상공부가 요란하게 이견대립을 보였듯이 오히려 그런 활기가 중요합니다.
이견대립이야말로 각부처 각공무원들이 저마다 그야말로 사명감을 다해 헌신하고 있다는증거가 아니겠읍니까.
자꾸 토론을 해서 합의를 찾아내는 과정,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행정을 펴나가는 것이니까요.
어쨌든 하루빨리 이 엄청난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모든 국민들이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아심기일전해야 할 때입니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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