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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통계의 중추 - 센서스] 하. 미, 대통령 경호 위한 정보 요구도 'N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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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0년 미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수집한 조사표를 전문요원들이 코드화 해 전산입력 하고 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공습하자 미 연방 정부는 하와이에 살고 있는 일본인의 명단과 주소를 센서스국에 요구했다. 적과 내통할지 모를 일본인을 격리시키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센서스국은 이 요청을 딱 잘라 거부했다. 전시 중이라도 상부의 명령보다는 '개인 정보를 공개해서 안 된다'는 법률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달 26일 미국 워싱턴 DC 북쪽의 센서스국에서 만난 유진 벤더로빅 팀장은 이런 과거를 설명하면서 "인구조사국이 센서스를 담당한 150년 동안 한 건의 정보도 유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프라이버시법이 운용된 것은 겨우 79년부터다. 그는 "미국에는 불법 체류자가 많은데 이들 중 상당수가 센서스 조사에 응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센서스로 얻은 모든 자료는 오직 통계자료로만 쓴다. 그러나 아직 국민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지는 못하는 편이다. 정부 부처별로 발표하는 통계가 서로 왔다갔다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조사 내용을 부풀린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 대통령도 알 수 없는 개인정보=50년 미국 백악관이 보수공사에 들어가면서 트루먼 대통령은 임시로 이사를 해야 했다. 당시 경호실은 센서스국에 트루먼 대통령이 이사할 지역의 이웃 사람들에 관한 정보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인구조사 담당 책임자였던 에드 골드필드의 답변은 "절대 안됨(Definitely No!)"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이웃주민의 개인정보를 준다면 국민이 센서스국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개인정보 보호 강도가 너무 강해 필요한 조사를 못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일본 센서스에서는 출산 아이 수와 결혼지속 기간에 대한 질문을 70년 조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항목은 유엔이 권고한 조사 항목인데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아예 뺐다. 인구추계를 발표하는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다카하시 시게사토(高橋重鄕) 부소장은 "인구추계에 필요한 출생아 수가 센서스 항목에 없어 별도의 표본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칫 잘못해 센서스 조사원이 정보를 누출할까봐 철저한 안전대책을 세운다. 미국의 조사원은 연방수사국(FBI)의 신원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센서스국 제니퍼 막스 팀장은 "국세청 또는 검찰.경찰 등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조사원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 국민 신뢰 얻어야=우리나라도 개인정보를 유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정도로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한다. 통계청 오갑원 청장은 "센서스에서 조사된 개인정보는 모두 코드화해 입력하기 때문에 파악할 수 없고, 지금껏 단 한 건도 유출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 신뢰는 이에 못 미친다. 60년대 국내 센서스를 설계했던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조이제 박사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개인정보를 함부로 쓰고, 통계를 조작한 것을 본 국민이 아직 정부를 100% 믿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인구집계를 할 때 군(郡) 규모의 지자체가 시로 승격해 예산을 더 받아내기 위해 유령인구를 조사표에 등재, 인구를 부풀린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전체 인구가 5000만 명이 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워싱턴.도쿄=김종윤.김원배 기자

70년대 인구 … 80년대 교육 … 90년대 교통
변화하는 조사항목

인구주택총조사의 조사항목은 시대변화상을 반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사항목을 국회에 보고하지 않고, 승인도 받지 않는다. 반면 미국과 일본에서는 조사항목을 입법부에 보고하고 변경 시에는 승인받아야 한다. 한국 방식은 국회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시대변화에 맞춰 조사항목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너무 시대변화만 좇다 보면 일관성 있게 조사항목을 유지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다.

1970년대에는 인구 증가와 도시 집중화 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출산력을 알아보는 데 초점을 맞췄고, '1년 전 거주지'항목이 처음으로 들어갔다.

80년대에는 교육실태와 향후 직업수요 파악을 위해 전공과목 조사에 중점을 뒀다. 90년대 들어 교통난이 심각해지면서 교통실태 파악에 주력했다. 조사결과에 맞춰 광역 교통대책이 마련됐다.

컴퓨터 및 인터넷 활용, 개인용 통신기기 조사 등 지식 및 정보화 사회 관련 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은 2000년이다.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정보기술(IT) 사회에 맞춰 처음으로 정보화 환경 조사가 이뤄졌다. 우리 사회가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전환하고 있다는 실마리를 발견한 것도 90년 센서스 때다. 당시 아동보육 실태, 생계수단 등도 함께 조사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인구.주택.가구 등 기본조사는 전 가구를 대상으로 일관성 있게 하고, 시대별 특성을 파악하는 조사는 10%의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한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도 비밀보장 해줘 미주 한인 센서스 적극 참여"
하와이 전 한인회장 조태룡 목사

하와이에 사는 한국 교포들은 2000년 미국의 인구주택센서스에 적극 참여하자는 취지에서 '센서스 참여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센서스에 참여해 정확한 한인의 숫자를 알려 한인의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자는 의도였죠."

당시 한인회장이었던 조태룡(74.사진) 목사는 "불법체류자도 있어 비밀보장을 걱정했는데 센서스국은 프라이버시를 확실히 보호한다는 내용의 한국어로 된 안내문을 배포하면서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한인 교포들이 미국 센서스에 관심을 돌린 것은 센서스 결과 한인의 수가 적은 것으로 나타나자 한인사회에 대한 지원이 줄었기 때문이다. 1990년 실시된 센서스에서 하와이 내 한국 교포들의 숫자는 1만4000명으로 파악됐다.

"당시 교민들은 하와이 교포가 최소 2만 명은 넘을 것으로 봤어요. 사는 데 바쁘다 보니 조사에 응하지 않은 결과죠. 일본 24만 명, 필리핀 7만 명 등에 비해 월등히 적었죠."

이 결과 이민 온 한인 교포를 위해 주(州) 정부가 채용하는 현지 영어선생이 줄고, 하와이 주 정치인들은 한인 사회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조 목사는 "2000년 센서스에서는 한인단체가 자비를 들여 전단만 10만 장을 찍어 돌리는 등 참여 캠페인을 벌였다"고 말했다. 이 결과 2000년 센서스에서는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 수가 2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하와이 주 정부는 센서스 이후에 한인 대상 언어교육 예산을 늘렸다. 주 의회에 한국인 보좌관을 채용해 한인들의 민원을 맡게 했다.

조 목사는 "당시 적극적으로 참여한 한인들의 개인정보가 공개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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