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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노출된 원안위 위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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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한별 기자 중앙일보 Product 담당
2012년 설계수명을 채운 뒤 가동이 중단된 월성1호기. 재가동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뉴시스]
김한별 사회부문
기자

원자력발전소 월성1호기 재가동 심사를 하루 앞두고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위원 한 명과 전화 통화를 했다.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눈 뒤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늘 하루 열 통 넘는 전화를 받았다. ‘아기 엄마인데 원전 때문에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친척이 월성1호기 인근에 사는데 원전 폐쇄를 바란다’는 식이었다. 다른 위원에게 물어보니 ‘나도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고 하더라.”

 원안위는 상임위원인 이은철 위원장과 김용환 사무처장 외에 7명의 비상임 위원들로 구성돼 있다. 여당·야당이 각 두 명, 정부가 세 명을 추천한다. 대중적으로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포함돼 있다. 어떻게 그들의 개인 연락처를 알고 전화를 걸었을까. 원안위원이 들려준 이야기는 귀를 의심케 했다.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아셨느냐’고 물었더니 ‘인터넷 카페에 명단과 전화번호가 다 떠 있다. 원전 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전화를 걸자고 해 동참했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중요한 이슈인 만큼 자유롭게 의견을 펴야 하지만, 이런 방식은 곤란하다. 위원들이 소신을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물론 그 위원은 그런 전화에 개의치 않고 소신대로 투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위원들이 혹여 느낄지도 모를 심리적 위축감이 우려됐다.

 월성1호기는 2012년 설계수명 30년을 다 채워 가동이 중단되면서 그 이후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계속 운전(수명연장)을 요구하는 한국수력원자력과 재가동 적합 의견을 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전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로 폐로(廢爐)를 주장한 환경단체 회원·지역 주민 모두에겐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와 이유가 있다. 원안위 위원들은 이들의 의견을 듣고 전문성과 양심을 바탕으로 찬반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위원들의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모두 노출되고 이들에게 조직적으로 전화를 돌려 영향을 끼치려 한다면 과연 상식적 사회라 할 수 있을까.

 원전은 국가 전력수급의 핵심 축이다. 동시에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시설이기도 하다. 공식적인 절차와 과정을 거쳐 소통이 이뤄져야 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견해차를 좁히고 합의를 도출하는 소통의 과정을 무시한 채 원안위원들의 신상정보를 노출하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상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왜곡시킬 뿐이다.

 월성1호기 외에도 수명을 다할 원전은 앞으로도 줄줄이 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 원전의 재가동 여부 그 자체보다 서로 ‘룰’을 지키며 대화하는 전통을 마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한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