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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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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먹는 것에 대한 사랑보다 더 거짓 없는 사랑은 없다. "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의 말이다. '먹는 것'에 '김치'를 대입한다면 이 말의 주인공은 분명 한국인일 것이다. 김치에 관한 첫 기록으로 보통 중국 '삼국지(三國志)'의 '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을 거론한다. '고구려인은 채소를 먹고, 소금을 이용하며, 젓갈 담그기에 능하다'는 대목이 있다. 삼국시대엔 순무.부추 등을 소금으로 절인 장아찌형 김치를 먹은 것으로 추정한다.

김치를 뜻하는 글자 '저(菹)'는 '고려사(高麗史)'에 처음 등장한다. 고려시대 김치는 장아찌형에서 동치미.나박김치 등으로 발전했다. 단순 소금 절임에서 벗어나 파.마늘 등 향신료가 가미된 양념형 김치도 나타났다. 조선시대 중기 고추가 들어오고, 이어 통배추 재배가 본격화하며 김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젓갈도 다양하게 쓰고, 식물성 재료에 동물성 재료를 첨가하는 등 김치의 감칠맛이 더욱 향상됐다. 제조 방법도 소금기를 뺀 뒤 김치를 담그는 '2단계 담금법'으로 발전했다.

우리 민족은 김치를 '지(漬)' 또는 '저'로 불렀다. '지'는 물에 담근다는 뜻이다. 묵은 김치를 말하는 '묵은지'에 흔적이 남았다. 김치의 어원과 관련, 소금물에 절인 채소를 뜻하는 한자 '침채(沈菜)'가 '팀채'로 발음되다 '딤채→짐채→김채→김치'로 바뀌었다는 견해가 있다.

중국에선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담근 채소)'라고 부른다. 2003년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발생했을 때 한국 파오차이는 큰 인기를 얻었다. 김치 먹는 한국인은 '사스'에 안 걸린다는 소문이 나면서다. 이어 한류 드라마에 김치가 등장, 김치 붐을 일으켰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했다는 "김치 담가 줄 수 있겠니"라는 대사가 중국 젊은 층을 열광시켰다고 한다.

한.중 간에 김치전쟁이 한창이다. 김치에서 납이 검출됐다, 기생충 알이 나왔다는 등 험한 말이 경쟁적으로 터져 나온다. 대만 언론은 '중국에선 김치의 붉은 색을 내기 위해 벽돌가루를 넣기도 한다'고 전한다. 김치전쟁은 속히 끝내야 한다. 폭로보다 대책이 필요한 때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1950년 94세로 타계한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우물쭈물하다간 세계적 발효식품 김치가 세계적 혐오식품으로 전락할까 두렵다.

유상철 아시아뉴스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