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정복자들의 파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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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그러면서도 북의 김정일 지배 체제에 조단위 돈벼락을 안겨 주는 노 정권, 그것도 모자라 빚 내고, 세금 더 걷는 대북 지원, 한마디로 식량.의약품 등 인도적 차원을 넘는 천문학적 대북 지원의 진정한 의도와 목적은 무엇인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라 곳간을 채운 일이라고는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곳간에서 그렇게 무한정 빼내도 양심에 가책이 되지는 않는 것인지 의문이다. 경제 발전의 씨앗을 뿌린 자와 열매를 거두는 자가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것인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국민은 경제 걱정 단계를 지나 내일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해하는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런데도 노 정권은 나라는 반석 위에 올라섰고,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는데 왜들 그렇게 불평불만이냐고 태연하기만 하다. 되레 말한 사람을 무안케 한다. 심지어 사회 원로들이 나라 걱정하는 충정에서 한 말씀 하면 오히려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정치적 발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선사한다. 이제 노 정권과 국민은 평행선을 지나 다시 합쳐지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벌어진 두 갈래 길을 가고 있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단적으로 정복자 사고에 젖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마침내 대한민국을 '정복'했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이들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성취한 많은 것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한강의 경제 기적도 그까짓 것일 뿐이다. 맥아더가 원수(怨讐)로 몰려 국제적으로 배은망덕한 나라가 되어도 크게 신경 안 쓴다. 미국이 한국의 경제재건과 민주화를 지원한 결과가 반미주의(反美主義)인가 허탈해해도 개의치 않는다.

정복자들의 통치 패러다임은 분열 지배(devide and rule)다. 나누고 갈라 다스리는 것이다. 노 정권 들어서고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보수.수구가 되어 있더라, 이것이 분열 정치의 서곡이었다. 세계적으로 여권(女權), 낙태, 사형제도, 동성애, 세금 인상, 정부 규모, 이런 것들이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그런데 노 정권하에서는 독재를 혐오하고 투쟁해온 민주주의 신봉자도 냉전 수구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가 막힌 것은 진보와 개혁의 정체가 공산적화통일과 세습공산체제에 대한 호의적 정서와 무조건적 애정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진보주의자에 대한 모독이다.

생활고로 자살자가 늘어나든, 노숙자가 증가하든, 대통령 연설을 듣고 강에 뛰어들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 정복자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북에 무조건적으로 갖다 바치는 '조공(朝貢)'도 대한민국을 정복하려 했던 그들을 흠모하고, 그들의 정복 실패를 아쉬워하는, 북의 정복자 사고(思考)를 공유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노 정권의 바닥을 기는 국정 지지율, 연이은 재.보선 대패(大敗),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민이 대한민국 정복 시도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탄핵인 것이다. 착한 백성들의 무언(無言)의 저항인 것이다.

급기야 학교 교실이 계급투쟁과 반미주의.반시장주의를 가르치는 전교조 이념교육장으로 전락하고, 공영방송은 반(反)대한민국 선전의 전위 도구가 되고, 국가의 정체성과 가치를 훼손하는 반국가적 행위가 방임되고 조장되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의도적 무정부 상태에 놓여 있다. 국부(國富)는 북으로, 외국으로 유출되고 반기업 정서와 기업 때리기는 횡행하고, 공산 적화 운동은 공개적인 것이 되고…. 과연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복자들만 수확하고 나누는 그들만의 파티장(場)이 될 것인가. 눈 크게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이관열 강원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