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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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암살이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적은 없다. 이말은 「에이브러햄·링컨」이 암살되었을때 영국 하원의「B·디즈레일리」가 의회에서 한 연설이다.
1947년 7월19일 바로 버마임시정부의 각의에 기관단총을 난사한 일이 있었다. 그무렵 제헌의회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련맹 (AFPFL)의 지도자 「아웅산」과 그의 각요들이 몰살되었다)우익「우· 소」파의 음모였다. 그러나 버마의 역사는 바뀌지 않았다. 그때 테러리스트에게 돌아간 것은 버마국민의 저주뿐이었다.
1914년 6월28일 보스니아수도 사라예보의 총성도 있었다. 이곳을 방문중인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부처를 겨냥해 쏜 것이었다. 이들은 암살되고 그 불꽃은 제1차 세계대전까지 불러들였다.
바로 그 총부리를 댔던 청년의 보스니아는 오늘 나라의 이름조차 남지않았다. 공산치하의 당이 된 것이다. 축복도, 승리도 아닌 어두움과 우울이 그들의 대가였다.
암살을 뜻하는 「어새시네이션」이란 영어의 어원은 「해시신」(hashishin)이다. 「해시시」라는 마약을 먹은 사람을 두고하는 말이다.
11세기말「하산·사바」라는 인물이 페르시아에서 정치적 비밀결사를 만들어 소수의 음년들이 마약을 먹고 정치요인들을 암살했었다. 광인의 경지에서 자행한 살인행위였다.
암살의 동기는 흔히 정치권력사이의 분쟁이다. 권력자와 그의 반대자들이 서로를 견제하기위해 서로를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를 고비로 그런 악덕의 정치는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 일각에서 때때로 총성이 들리긴 하지만 그것은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예에 불과하다. 그보다도 암살자는 그나라 국민의 저주를 견디어 낼수 없다.
「레이건」대통령을 겨냥했던 「힝클리」청년의 예도 있지만, 그야말로 정신병자였다.
그러나 이 지상엔 바로 그 악덕의 정치를 아직도 예사롭게 정치의 수단으로 삼고있는 집단들이 있다. 공산세력이 숨어있는 곳이 예외가 아니다. 공산세력중에서도 오늘의 북괴는 특히나 이질적인 광인의 집단이다. 북한의 정치술은 주민들에게 광신적 추종이라는 마약을 강제로 먹이고 있다..
그들은 이미 1970년 6월22일 서울동작동 국립묘지의 현충문에 폭탄을 장치했던 전료가 있었다.
지금 버마 랭군의 국립묘지에서 벌어진 참극도 필경북괴의 음모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버마의 외교퍼레이드는 그들의 정치적 열등감을 자극하고도 남을만 했을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돌아간 대가는 무엇일까. 세계인의 경멸과 민족적 저주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이 지상에서 없어야할 집단이 있다면 바로 북괴인 것을 우리는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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