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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레이건의 1981년, 박근혜의 201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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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논설위원

무엇을 제대로 할 수도, 결정할 수도 없는 정치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경제회생 개혁은 소리만 요란할 뿐 시행의 법제화는 요원하다. 청와대나 여야 모두 자기 주장만 하는 메가폰 정치에 몰입해 있다. 복지 문제는 신학 논쟁화하고 있다. 방법론과 수치 없는 현상유지, 확대론에서 맴돈다. 곳간은 비어 있는데 민심만 챙기려는 레토릭이 무성하다. 행정부처는 플랜 B, C를 내놓지 않는다. 선거가 없는 해, 대선을 치르는 것 같다. 100% 대 0%의 권력의 원초적 모습, 정치공학만 어른거린다. 자조적이지 않으려 해도 삼류 국가라는 말을 억누를 수가 없다.

 나라의 틀이 헝클어진 데는 리더십 적자(赤字)가 깔려 있다. 대통령 직무 평가도(지지율)가 20%대로 내려앉았다. 지지율은 대통령의 동력이다. 헌법상 권력이 힘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회를 압박하기가 쉽지 않다. 대통령 지지율이 정국의 중대 변수가 되는 것은 국회의 힘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의회의 내각 불신임권이 있는 내각제가 아닌데도 말이다. 하지만 국회의 리더십 적자는 아예 바닥권이다. 본업인 입법이 뒷전이다. 국회선진화법은 항구적 적자를 부를지 모른다.

 여기에 사회의 컨센서스를 이루기 어려운 환경도 있다. 4000만 명 총 정보 발신의 시대다. 여론이 세포 분열한다. 선악의 이분법, 말초적 콘텐트가 복잡한 논리를 구축하기 일쑤다. 그렇지만 국정의 궁극적 책임은 국가 수반에 귀착된다. 위기와 혼돈의 순간, 맨 위만 쳐다보는 게 동서고금의 인지상정이다. 대통령은 나라의 구심점이다. 리더십 적자를 걷어내야 한다. 내정과 외정(外政)은 동전의 양면이다. 지지 여론이 가라앉으면 대외정책에서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 상대국은 합의를 꺼린다. 리더십의 리셋이 필요하다.

 1981년의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여러 시사점을 준다. 레이건은 새 경제 정책에만 초점을 맞춰 그해 다섯 번 국민과 의회 앞에 섰다. 당시 미국 경제는 암울했다. 800억 달러의 재정적자, 12.4%의 인플레이션, 700만 명의 실업자를 안고 있었다. 레이건은 취임 보름 만의 TV 연설에서 네 가지를 제시했다. 감세, 세출 삭감, 규제 개혁, 통화량 조정의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였다. 연설은 대공황 이래의 큰 정부·수요 중시 경제에서 작은 정부·공급주의 경제로 바꾸는 레이건 혁명의 시작이었다. 레이건은 X·Y축이 든 두 장의 차트도 등장시켰다. 지적 호기심과 세부(detail)가 가장 약한 대통령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듣는 그였다. 내용은 적절한 비유로 누구나 알기 쉽도록 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설득 작업이었다. 별명인 위대한 소통가(Great Communicator)다운 시도였다. 다섯 번의 연설은 레이거노믹스가 든 예산조정안 성립과 추가 감세를 위해서였다.

 백악관은 레이건 TV 연설 전 수 주간의 준비 작업을 하고 여론조사를 했다. 언론엔 브리핑을 하거나 고의로 정보를 흘렸다.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도 해결해주었다. 선거구 네트워크도 동원했다(『전략적 대통령』, 조지 에드워즈 3세). 그렇다고 레이건의 재임 시 지지율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83년 1월엔 35%까지 떨어졌다(이하 갤럽 조사). 재임 8년간 지지율은 52.8%였다. 해리 트루먼 이래 대통령 평균 지지율을 밑돈다. 레이건이 최고 대통령 반열에 든 것은 훗날 조사에서였다. 레이건의 81년은 대통령 리더십의 한 전형으로 남아 있다.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면밀하게 여론을 읽어 환경을 조성하고 정책의 물줄기를 바꿨다.

 지금 우리는 경기 침체와 복지 확대 요구의 모순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복지는 미개척지다. 산업화·민주화에 이은 새 도전이다. 대통령 리더십 적자가 오늘이 팍팍하고 내일이 불안한 민심에서 상당 부분 파생한다면 구조적일 수 있다. 거꾸로 해법도 그 안에 있을 것이다. 현 상황이 어떠하며, 어디로 가려는지에 대한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 장(場)이 서 있을 때의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된다. 대통령 권력은 설득력이고, 설득력은 협상력이라고 하지 않던가. 정치적 자세도 초당파적 조정자로 돌아서야 한다. 국민은 도전에 맞서는 낙관주의 리더십에 목말라 있다.

오영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