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 보수내각의 파장을 우려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극우 보수파 인사들을 내각에 전진배치했다. 특히 일본을 국제사회에 대표하는 외교의 책임자 자리에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원해서 했다"는 식의 망발을 일삼았던 아소 다로를 기용, 향후 일본 외교가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역사를 미화하고 궤변을 강변하는 역할을 도맡을 것 같은 인상마저 주고 있다.

개각이 일본 내 정치 행위라고 하지만 일본의 잘못된 과거사 인식과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이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 왔고, 이것이 동북아의 협력과 평화를 위협하는 하나의 요인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인사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역사로 고통을 받은 주변국들의 상처를 후벼 더욱 골을 깊게 만들자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고이즈미의 이번 인사에 비판적인 여론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또 대다수의 일본 국민은 평화헌법의 가치와 정신을 존중하며 주변 국가들과 함께 불행했던 과거사를 극복하고자 한다. 하지만 과거 군국주의 시절에도 소수의 전쟁 옹호 세력이 정치를 장악한 뒤 일본과 주변국을 엄청난 피해의 전쟁으로 몰아갔던 기억을 상기한다면 이번 인사는 퇴영적.반역사적 행위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일본의 이와 같은 행태는 향후 동북아 및 세계 평화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평화헌법이 이번 내각 임기 동안 완전히 유명무실해지고 자위대의 군대화가 완료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이를 빌미로 또 다른 패권주의를 지향할 것이다. 동북아는 중-일의 대결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당장 다가올 6자회담 등에서도 일본은 더욱 경직되고, 비타협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일 동맹을 강화해 아시아 경시외교를 더욱 노골화할 가능성도 크다.

이럴 경우 한국은 외교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외교 진로를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한다. 단선적인 반미나 민족공조만 외친다고 복잡한 외교 방정식을 풀 수 없다. 우리 외교당국의 면밀한 대처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