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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 보고 3분 생각하는 스낵컬처 … 댓글로 참여 유도하는 여백이 묘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웹툰은 ‘스낵컬처’의 대표 장르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의에 따르면 스낵컬처는 “스낵처럼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기는 문화”다. “대중화된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출퇴근시간, 점심시간 등에 10~15분 안팎의 웹·모바일 영상 콘텐츠 등 즐기기”가 그 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스낵컬처가 주요 문화 트렌드일 것이라 예상하는 전문가가 많다.

확실히 요즘 웹툰 중에서도 특히 짧은 웹툰이 부상하고 있다. 최근까지 네이버에서 가장 짧은 연재 웹툰은 컷부 작가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였다. 그림은 채색도 없이 마치 중고생이 쉬는 시간에 연필로 그린 듯한 스타일이고, 내용은 날아가는 원반을 엉덩이로 잡는 등 어이없는 내용이 많고, 게다가 단 몇 컷으로 끝나는 바람에 “작가가 마감 5분 전에 그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곤 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웹툰은 그 황당함과 허무함이 매력인지 언제나 웹툰 순위 상위를 차지했다. “짧으니까 일단 보는데 오늘도 내가 뭘 봤는지 모르겠다”거나 “다시 정주행하는 데 불과 5분 걸렸다”는 댓글이 달리곤 했다. ‘정주행’은 연재물을 1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보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짧은 맛에 스낵처럼 보는데 왜 시간을 들여 다시 보고 또 시간을 들여 댓글은 다는가. 심지어 각 회마다 그날의 어이없는 내용에 거창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댓글이 달리곤 한다. 독자들은 이 웹툰의 간결함이 제공하는 일종의 여백, 각자 한 마디씩 풀어놓을 수 있는 그 여백을 즐기는 듯했다.

이보다 더 짧은 배진수 작가의 ‘하루 세 컷’이라는 만화가 등장했다. 아예 “본격 3초 구걸 만화”라고 칭하면서, 3초만 할애해 보는 스낵컬처를 표방하고 있다. 이 만화 역시 조회수 상위 순위다. 어떤 회는 썰렁하고, 어떤 회는 시조나 하이쿠처럼 의미심장하게 긴 여운을 남긴다. 그런 경우 그 회 내용을 분석하는, 이 ‘3초 웹툰’ 텍스트보다 훨씬 긴 댓글이 달리곤 한다. “웹툰은 3초, 생각하는 데 몇 분, 댓글 읽는 데 몇 분 걸린다”라는 댓글도 있다.

새로운 인기 웹툰으로 마일로 작가의 ‘여탕보고서’가 있다. 목욕탕에 1주일마다 가는 작가가 목욕탕에서 파는 커피, 탕 온도를 둘러싼 연장자들과의 신경전, 목욕탕 바가지로 할 수 있는 놀이 등 소소한 목욕탕 문화를 담백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웹툰 사상 등장인물의 노출이 가장 심하지만 하나도 안 야하다”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웹툰 역시 앞의 웹툰만큼은 아니지만 꽤 호흡이 짧다. 그런데 댓글은 매우 활발하게 달리며, 그것도 꽤 긴 분량으로 달린다. 남성독자들은 앞다투어 그 회의 주제와 관련해 남탕과 비슷한 점, 다른 점을 짚어낸다. 웹툰 못지 않게 재미있는 댓글도 등장한다. 여성 독자들이 여기에 질문을 던지면 또 다른 남성 독자가 대답하기도 한다. 댓글끼리 대화가 이루어진다. 목욕탕과 관련한 온갖 추억담도 댓글에 등장한다.

이렇게 짧은 웹툰과 긴 댓글의 조합을 보면서 스낵컬처의 유행이 단지 빨리 소비하고 버리기 위한 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정주행’으로 대표되는 주체적인 곱씹음에 대한 욕망과 ‘댓글’로 대표되는 참여의 욕망이 스낵컬처의 또다른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다섯 시간 걸려 책 한 권 읽는 것은 다섯 시간 동안 저자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는 것과 같다. 거의 다 듣고 나야 좋은지 아닌지 판단이 선다. 스낵컬처를 선호하는 소비자는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빠른 시간에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판단해야 하며. 마음에 들면 짧게 소비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정주행’을 반복하며 곱씹는다. 스낵컬처에는 가벼움만 있는 게 아니라 주체적 문화 소비의 욕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결코 빠른 시간에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므로, 스낵컬처의 확산이 좋고 싫음을 빨리 결정하고 싶어하는 인내심 결여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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