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의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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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왓까나이시는 인구 5만3찬명의 일본 최북단의 국경도시다.
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사할린에 살던 일본인들이 소련군에 밀려 본토로 피난온것도 왓까나이 항구를 통해서였다. 그래서 지금도 매년9월이면 이곳을 찾는 사할린 실향민들로 왓까나이 시내의 숙박시설은 모자란다고한다.
실향민들은 왓까나이공원에 세워진 「9인의 처녀들 비」앞에서 「망향의 아픔」을 달래며 바다건너 사할린땅을 향해 합장을하고 실지회복을 다짐하고 돌아간다고 한다.
「9인의 처녀들 비」는 45년8월20일 소련군이 사할린에 진주했을때 끝까지 우체국교환대를 지키며 『소련군침공』 을 타전하고 끝내 학살당한 교환양 9명의 넋을 기리기위해 만든것.
이때문에 일본인들은 왓까나이공원을 「망향의 공원」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사할린실향민들의 한을 지닌 왓까나이 앞바다가 지난 5일부터 『성희야』, 『은준아빠-』, 『준식이오빠-』를 찾는 한국인들의 통곡으로 덮여졌었다.
일본의 한 신문은 한국인들의 통곡소리를 그대로 옮겨 『아이고의 바다』 라고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통곡의 바다와 KAL기가 추락한 것으로 부정되는 해역은 보이지 않는 출입금지의 선으로 가로막혀 KAL기 유가족들은 끝내 그곳까지 접근하지 못하고 조류를 통해 오빠가 좋아하던 책과 언니가 그린 그림, 조카가 갖고놀던 장난감, 딸이 즐겨읽던 시집만을 흘려보냈다.
왓까나이 시민들도 우리와 같은 배를 탄듯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는 인상이다.
그러나 그들은 『왜 아직 죽음을 확인도 하기전에 서둘러 위령제를 지내느냐』 『왜 탑승객가족들을 유가족이라고 부르느냐』 고 반문하면서 좀더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궂은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행여 서둘러 모든것을 종결지으려는 단견이 작용했다면 왓까나이 앞바다의 통곡은 통곡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염려에서 나온 반문인듯 했다.
끝맺음만은 좀더 신중히 챙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왓까나이시=김재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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